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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의 드라마’ 막으려면
2003-12-18
‘파국의 드라마’ 막으려면 어디까지 가려는가. 아침에 펼치는 신문 정치면에 무슨 일이 터져 나올지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너무도 지루하게 끌어오고 있는 대선자금 정국인지라 눈길도 주기 싫건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돌발적인 상황이 전개되는 바람에 눈길을 돌릴 수도 없다. 지난 수개월 동안 불법 대선자금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보여준 정치행태는 파격의 연속극이었다. 측근 비리에 도덕적 책임을 지겠노라며 국민투표를 통해 재신임을 받겠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폭탄 선언에 이어 측근 비리를 특검을 통해 규명해야 한다는 야권의 의기투합이 있었고, 대통령은 이에 대해 3분의 2가 넘는 국회의원들의 의결을 거부권행사로 제동을 걸었다.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단식으로 대응했고, 그 결과 의정사에 길이 남을 거부권 재의결로 한고비 넘기는가 했다. 이라크 파병 등 국정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당대표들의 청와대 회동에서 노 대통령은 다시 한번 대통령직을 거는 발언으로 국민들을 경악시켰다. 대본에도 없었던 발언을 불쑥 불쑥 내던져 관객을 당혹하게 만드는 것은 무슨 심보인가. 이른바 ‘10분의 1’ 발언은 드라마의 본질과 동떨어진, 줄거리에서 너무나도 빗나간 대사였다. ‘11분의 1’은 괜찮으니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 어지간해서 이해하기 어렵다. 주연배우인 대통령이 스스로 조건을 내놓고 여차하면 그만두겠다는데, 주변에는 이러한 대사를 마구 쏟아내어도 한마디 따끔하게 충고해줄 사람이 없단 말인가. 믿었던 참모들마저 하나, 둘씩 구속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형국이다. 결국 엽기 드라마는 외면당하고 파국의 드라마로 치닫고 있다. 시청자들이 텔레비전을 완전히 꺼버리려는 것을 눈치챘는지 각본을 바꿔 정상적인 드라마로 바꿔보려는 조짐이 약간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회창 전 대통령후보는 기자회견을 통해 본인이 책임지겠다는 결의를 보이고 곧바로 검찰에 자진 출두했다. 노 대통령도 반성의 정치를 제시하며 부끄러운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 또한 국면전환의 한 장면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현재 정치상황의 심각성을 정치게임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정치게임으로 불법 대선자금 정국을 이용하려 한다면 파국의 드라마는 훨씬 앞당겨질 수 있다. 최병렬 대표는 단식하던 마음으로 되돌아가 자체조사를 통해 아는 대로 모든 것을 먼저 밝히고 사법당국의 수사에 능동적으로 협조하고 국민의 심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사실상의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노 대통령에 대한 따가운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대통령의 언행을 무조건 옹호하면 할수록 열린우리당은 대통령당으로 전락할 것이며, 결국 신당 창당의 존재의미를 잃게 된다. 시청자들이 드라마가 정상 궤도로 진입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는 것은 검찰 수사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대통령이 어떠한 발언을 하든, 야권에서 무슨 시비를 걸든 국민과 함께하는 자세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검에 맡겨도 별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수사하여 더 이상 특검의 필요성이 거론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공안검찰,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어버리고 국민의 검찰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호기가 아닌가. 검찰의 엄정한 수사가 드라마를 침울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시청자들을 완전히 떠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권이 사고 치고 국민들이 수습하는 드라마는 이번으로 마지막회가 되길 바란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18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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