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화감’에 볼모잡힌 교육 .....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시대는 가고 남이 학원 가면 배가 아프다는 세상에 와 있다. 입시경쟁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의 계층적 위화감이 사회통합에 지대한 장해요인이 되고 있는 까닭에 정부는 서민들의 자녀가 대학 들어가기 쉽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해서 시행해 왔다. 대학수능시험 출제를 쉽게 하고, 학교 차를 없애고, 과외를 금지하고, 교차지원을 허락했고, 자립형 사립고를 반대해 왔고, 그리고 내신성적 평가에서 일류고출신 학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책을 펴왔다.

중산층 가족이 교육이민 또는 조기유학을 위해 고국을 떠나도 정부는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오직 소외계층 보호에만 관심을 쏟았고 중산층 욕구를 충족시킬 방안을 내놓지를 못했다. ‘수재’와 ‘둔재’를 한 교실에 수용해서 둔재 기준으로 학습진도를 잡으니 천재들이 학교를 빠져나가 학원에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소외계층을 달래려 하면 중산층이 달아나고 중산층을 잡자니 소외계층이 마음에 걸리는 판국이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교육정책은 어느 계층 한쪽에만 치우쳐서는 안 된다. 이 점에서 이질집단 대처에 관한 한 탁월한 경험을 가진 미국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다양하고 이질적인 종교를 가진 학부모들의 장기적인 갈등은 결국 종교와 교육 분리정책에 찬동하기에 이르렀고 정치와 교육 분리책에도 동의하게 됐다. 교육과 사회계급과 신분제도 갈등에 있어서도 버싱(Busing·흑백인 함께 버스태우기)이라는 제도를 고안해 흑백교육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흑인도 미국인이고 하층이나 중산층도 미국인이라는 믿음이 사회통합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우리는 국가보다 민족을 들먹이나 계층간 화합은 아직 묘연하다.

미국의 참된 교훈은 우열반 편성을 도입한 데 있다. 미국에서는 동질 또는 이질집단이라고 하지만 우열반을 나누면 동질끼리 집합되는 것이고 능력이 다양한 학생들로 구성되는 집단은 이질집단이다. 우리는 이러한 학습반 편성이 계층간의 위화감을 심화시키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 견해와 정반대이다. 동질집단은 ‘수재’와 「둔재」에게 다같은 이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지진아 집단인 동질학습반에서 얻는 학습효과는 이질집단에서 얻는 것보다 훨씬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 각국에서 학술적으로도 검증된 사실이다.

계층간 위화감에 대한 원인 규명과 대처방안은 이렇게 우리나라와는 다르다. 물론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남달리 강하기 때문에 교육평등이 이뤄져야 경제와 사회평등이 이뤄질 것이라 믿는지 몰라도 구미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패턴이 용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과연 이대로 선진국 대열에 끼고 교육경쟁력을 국제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고방식이 국제기준에 융합이 안되면 교육의 역기능 현상은 그칠 기미가 없다.

또한 학교 차가 있어서 문제가 되는 나라는 아마 우리뿐일 것이다.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대학이 하나도 없는 처지에서 우리는 명문고와 명문대 기피증을 조장하고 있다. 이 모두가 계층간 위화감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위정자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지 4년 만에 벌써 7명째 교육부장관이 들어섰다. 학교 차와 우열반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는 대통령과 장관들로서는 우리 교육제도를 국제기준으로 격상시키는 과제는 불가능하고 오직 오리무중으로 헤멜 도리밖에 없다. 그것으로 빈곤층 독재를 위한 시행착오만 계속하게 할 것이다.

위화감을 해소시키는 방법은 7차 교육과정 실시에 보조를 맞춰 우열반 편성을 제도화하고 학교차를 인정하는 것, 교육체제 공·사립 이원화를 받아들이는 것과 장학금제도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 그리고 새로운 교육이념을 되찾는 길밖에 없다. 소외계층이라고 독자적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사회이다.

( 金善鎬 / 자유지성 300인회 공동대표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9 시론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