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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본법'부터 만들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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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12 |
| '농업기본법'부터 만들어야 농정 실패에 반성 필요 … 세계 농정 흐름 따라잡길 11일 발표된 119조원 규모의 투·융자 계획을 담은 ‘농업·농촌 지원계획’은 농업생산기반 정비를 줄이는 대신 복지 및 지역개발, 소득·경영안정 부문을 확충하는 내용이어서 상당한 기대와 관심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정의 기본틀과 정책 방향에 관련해서는 종래에 제시되어 왔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칫 우루과이라운드(UR) 이후 ‘잃어버린 10년’의 경험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누구나 인정하는 과거 농정 실패의 원인에 대한 뼈아픈 반성을 토대로 하지 않는 한 과거 실패를 벗어나려는 노력은 성공을 기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UR 이후 한국 농정이 일정한 목표를 향해 발전하지 못하고 표류를 거듭해 온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농정을 일관성 있게 집행해 나갈 ‘농업정책의 기본틀’이 법률과 제도의 형태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적에 대해 ‘농업·농촌기본법’이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1999년에 제정된 현행 농업·농촌기본법은 1967년의 농업기본법과 1990년의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을 통합해 관련 조항을 정리한 선언법적 성격의 법률일 뿐, 농업 구조 조정과 농촌 지역 개발을 위한 기본 방향과 중요 정책을 담을 농정 지침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선언법에 그친 우리의 ‘농업·농촌기본법’에 비해, 미국의 현행 2002년 농업법이나 유럽연합(EU)의 ‘어젠다 2000’ 등은 적어도 3~6년 기간에 예상되는 여건 변화에 비추어 추진할 정책 방향 및 과제, 소요 예산을 담은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일본의 ‘식료·농업·농촌기본법’도 하위규정인 ‘기본계획’을 통해 5년 정도의 중기 집행 계획을 작성 운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10년간 119조원, 그 중 5년간(2004~2008년) 51조원의 방대한 재정을 투입하는 농업·농촌 발전계획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려면 내실있는 새로운 기본법 제정을 위한 준비에 착수하고, 이와 관련해 농민단체 뿐 아니라 소비자·납세자·각계 전문가 등 광범한 관련 주체를 포함한 투명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농업·농촌의 발전은 농업 관계자들만의 합의로 이루어질 수 없고, 소비자와 일반 국민의 공동관심사로 도·농간의 상호 이해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마지막 구조조정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할 각종 제도 장치를 개발해 정책의 수혜를 받는 농가의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고 친환경·식품 안전·지역간 균형 지원 등 사회적 요구에 효과적으로 부응할 시스템을 장착해 나가야 한다. 정책의 집행은 눈앞의 어려움에 매몰되지 말고 세계 농정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 농산물 품목별 대책보다는 품목을 특정하지 않는 경영단위 개념의 농업지원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또, 전업농 육성 등 특정한 경영 유형에 집착하기보다 자급 농가를 포함해서 농촌 지역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농가의 정착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이번 대책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내년으로 다가운 쌀 재협상, 내년 4월 총선 등 매우 민감한 사안을 앞두고 나와 불필요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지 않다. 정부는 이런 의구심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번에 마련한 계획을 새로운 농정틀을 마련하고 차질없이 추진하는 기초 작업으로 투명하게 운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농업·농촌기본법의 제정을 통해 농정의 나침반을 장착하고, 농림부와 농어업·농어촌특위를 포함한 정책 입안 및 집행 기구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이는 현행의 농정 입안 및 집행 방식을 온존시켜 놓고 또 한번의 시도를 거듭해 보아야 기대한 만큼의 신통한 결과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11. 12 시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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