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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청·임명권 합리적 조율을
2003-08-15
기본소득, 재원조달 방안.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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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청·임명권 합리적 조율을 지난 50여년간 수많은 대법관이 임명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신임 대법관의 임명에는 특별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뜨거운 관심에 비례하여 임명 절차 및 후보자에 대한 논란과 갈등도 적지 않다. 이처럼 이번 인사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신임 대법관의 임명을 통해 사법부에 변화의 바람이 일기를 기대하는 국민이 많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사법부의 변화 내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법조 비리가 발생될 때마다 논의됐던 법원의 내부적 개혁 움직임은 미미한 것에 그쳤다. 그동안 소장판사들을 중심으로 근본적 개혁이 논의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사법부의 조직 구조 및 인사 원칙 등에 대한 근본적 변화는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는 대법원의 보수적 성향 및 모든 사법부의 권력이 대법원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노무현정부에서는 개혁적 성향의 법관이 대법관으로 임명됨으로써 대법원에도 변화의 바람이 일기를 많은 국민이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법개혁은 정치개혁이나 교육개혁 등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사법부의 독립이 사법부의 존립 목적과 직결되는 본질적 요소인데, 자칫 외부적 세력에 의한 사법개혁의 시도는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함으로써 사법부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사법의 생명은 공정한 재판이고,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독립성을 통해 중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전제이기 때문이다. 최근의 논의에서 대법원(장)의 입장을 지지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가 사법부의 독립 내지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이라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사법의 특성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현행 헌법상 사법부의 독립은 이미 적지 않은 제약 요소를 안고 있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이 대통령에 의해 임명되는 것도 그렇고, 대법관이 연임될 수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과거 유신(維新) 직전 구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에 대한 위헌결정을 내렸던 대법관들이 모두 재임용에서 탈락됐던 사실은 그러한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임명할 때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장의 제청에 구속돼야 한다는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 내부의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고유권한이라고 보게 된다면, 대통령의 임명권 또한 고유권한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헌법상 보장된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자문위원의 의견 등에 전혀 구속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대통령이 대법원장의 제청을 거부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 아니라 삼권 분립 내지 사법부 독립의 침해라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대통령의 대법원장 및 대법관에 대한 임명권의 남용이 문제될 수 있고 그 때문에 그러한 권한의 제약이 필요하다고 인정한다면 대법원장의 제청권 또한 적절하게 제약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법부의 독립이라는 논거 또한 모든 것을 정당화시키지는 못한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모든 국가 작용과 마찬가지로 사법 작용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법부의 독립도 결국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수단이며, 사법부를 개혁해 국민의 인권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것으로 보기에 앞서 사법부의 존립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로 수용돼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결코 그 구성원들을 위해 인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사법부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개혁은 많은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자칫하면 빈대 잡으려다가 초가삼간 다 태우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개혁을 회피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인 사법개혁의 의지와 실천이 법원 내부로부터 나와야 할 것이다. 법 질서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법원의 속성상 사법부는 항상 입법부나 집행부보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보수성에도 일정한 한계는 있기 마련이다. 과거 1930년대의 대공황 당시에 미국의 뉴딜 입법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던 미국 연방대법원이 결국 여론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우리 대법원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을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8. 15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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