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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도 실효도 없는 한총련
200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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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도 실효도 없는 한총련 "답답하다." 이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 3월 한총련에 대해 언급하며 한 말이다.'참여정부'가 출범한 마당에 우리 사회가 한총련 문제에 계속 얽매여 있는 것이 "시대의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그 후에도 그는 한총련 자체의 합법화나 관련 학생에 대한 수배 해제 등에 관해 말할 때 "가슴 아프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이처럼 한총련에 대한 盧대통령의 애틋한 마음은 5.18 광주묘역 시위 관련자에 대해 사법처리를 최소화하는 방침에서도 계속됐다. 그러나 한총련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구애(求愛)는 지난 7일 한총련 소속 대학생 십 수명이 포천군 내 미군 사격훈련장에 기습 진입해 장갑차를 점거하고 성조기를 불태우는 사건으로 인해 크게 무색해졌다. 특히 이번 사태는 주한미군 당국이 이례적으로 한국정부의 강력 대응조처를 요구함에 따라 한.미 간의 외교적 문제로 비화돼 있다. 야당인 한나라당 또한 모든 책임을 盧대통령에게 돌리면서 대통령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까지 경고하고 나선 상황이다. 물론 대통령의 유감 표명과 국무총리의 엄벌 방침이 신속히 뒤따르긴 했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태를 진정시키는 데 얼마나 약효를 발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당사자인 한총련이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전혀 반성과 후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이번 미군 훈련장 시위와 한총련 합법화 문제는 전혀 별개 사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총련은 이번 반미 퍼포먼스를 통해 미국에 의한 '북침 전쟁 계획'을 한반도와 세계에 알리게 됐다고 자부하고 있는 형편이다. 아닌게 아니라 한총련이 우리 사회의 '애물단지'가 된 지도 꽤 오래 지났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한총련은 아직도 분명히 이적단체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구성원들이 싫든 좋든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라는 생각에 법 집행이 매몰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것이 이른바 '한총련 딜레마'의 본질이자 핵심이다. 실정법의 원칙에 기대자니 미래지향적 온정주의가 울고 온정주의로 접근하자니 실정법이 우는 격인 것이다. 역대 정부에 비해 노무현 정권이 보여주는 차이점은 이 같은 한총련 딜레마를 자초한 측면이 더 많다는 것 정도다. 하지만 한총련을 놓고 온정주의와 원칙주의 사이를 고민하는 일에는 더 이상 명분도 실효도 없어 보인다. 우선 최근 우리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고려할 때 한총련은 역사적 존재 가치를 소진한 것으로 보인다. 언필칭 전국의 3백만 대학생을 한 목소리로 대변한다는 특권적 혹은 초법적 학생조직이 이젠 가능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다. 게다가 한총련은 잇따른 폭력 행사를 통해 합법적 단체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또한 한총련에 대한 온정주의적 배려는 결과적으로 한총련에 의한 학생들의 훼손과 희생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일관성 있는 단호한 정책이 오히려 대학생 일반을 보호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총련 못지 않게 지겨운 것은 그들을 비호하고 이용하는 일부 사회조직 혹은 세력들이다. 설익은 진보 논리에 자기 도취된 지식인, 어린 철부지들의 방황에 편승하는 시민단체, 그리고 젊은 학생들에게 아부하기로 작심한 언론사가 존재하는 한 한총련 문제에 대한 국민적 차원의 해결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조.중.동'을 비난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이번 미군 훈련장 내 한총련 시위에 대해 보도기사 한 줄, 사설 한 편 때맞춰 싣지 않는 신문이 한국사회의 진보를 선도한다면, 도대체 그것은 누구를 위한 진보이고 어느 나라의 신문인가. 그리하여 정작 답답한 것은 한총련이 아니라 정부다. 진실로 가슴 아픈 것 또한 한총련이 아니라 틈만 나면 그것을 감싸 안으려는 일부 진보집단이다. 잘못에 빠진 자식과 제자를 구하는 데 국민의 뜻과 정부의 생각이 어찌 다를 수 있으며, 보수와 진보에 무슨 차이가 있을 수 있을까. 전상인 (한림대 사회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3. 8. 12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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