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사회시민회의

> 자료 > 보도자료

	죽은 기업인의 사회
	2003-08-11
죽은 기업인의 사회 요즈음 기업인들 사이에 아직도 사업을 하느냐는 인사말이 흔하다. 갖은 노력을 해도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운데 근로자들의 요구는 많다. 문제는 이러한 처지를 이해해 주는 사람조차 없다는 것이다. 냉대와 질시 속에 모든 짐을 혼자 지고 괴로워하는 기업인이 많다. 최근 어느 다국적 컨설팅사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최고경영자 가운데 70%가 국민이 기업인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조사 대상 22개국 중 가장 높은 수치이다. 기업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네덜란드의 경우 13%밖에 안 된다. 우리와 직접적인 경쟁을 하고 있는 대만과 싱가포르는 각각 18%, 28% 정도이다. 반(反)기업 정서는 시장경제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1980년 말 소련의 붕괴로 이념전쟁 시대는 끝났다. 이후 세계는 경제전쟁을 시작했다. 군사력 대신에 경제력을 기르며 경제 영토인 시장 확대를 위해 약육강식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러자 기업은 나라를 지키는 전투부대로서, 그리고 기업인은 전투부대를 이끄는 야전사령관으로서 역할을 부여 받았다. 이런 상태에서 국민들의 반기업 정서가 강하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아군의 사령관에게 싸움에서 물러나라고 야유를 퍼붓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성장의 동력을 잃고 위기를 맞고 있다. 피나는 노력을 해서 대학을 다녀도 제대로 취업을 하는 사람이 3분의 1밖에 안된다. 50세만 넘으면 무조건 정리해고의 대상이 된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울분이 터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이 쓴 빚이 쌓여 경제 호적에 빨간줄이 그어지는 신용 불량자가 340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삶의 희망을 갖게 하는 수단인 기업들은 너도나도 문을 닫고 있다. 기업을 일으키고 투자를 늘려야 할 기업인들에 대한 집단 매도가 도를 넘는다. 어느 기업인이 돈을 벌었다 하면, 어떤 비리를 저질러서 돈을 벌었는가, 세금은 얼마나 탈루했는가, 개인 재산을 얼마나 해외로 빼돌렸나 하고 온갖 죄명을 씌우기에 급급하다. 물론 비리와 편법으로 부당이득을 챙기고 근로자들을 탄압하며 불법 상속증여 등으로 사적 이득을 취하는 기업인들이 있다. 이런 기업인들이 죄를 받고 사회적으로 비난 받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밤낮으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기업을 살리려고 자신의 건강까지 해치는 기업인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물건을 들고 세계시장을 헤매는 행위가 왜 천시를 받아야 하는가. 상품을 개발하고 사업을 벌여보겠다고 돈을 꾸러 다니는 사람들을 냉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주 민족 분단의 비극을 극복하고 통일 기반 마련을 위해 대북사업을 펼치던 정몽헌 회장의 죽음이 있었다. 남북 경협을 위해 적자를 감수하며 몸부림치는 자신을 알아주기는커녕 비자금 수사로 목을 죈다고 생각하자 죽음 이외에 다른 길을 찾지 못한 것이다. 쓰러져서는 안 될 기업인에게 우리 사회가 죽음을 강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경제가 고도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 경제력 집중, 불법 세습 등 불법 비리가 만연했다. 따라서 부(富)의 축적이 정당화되지 않고 부당한 소득 격차 현상이 심해졌다. 그 결과 부유층에 대한 사회적 증오심이 축적되면서 기업인들이 공격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불법 비리를 차단하고 투명한 경영을 위한 기업 개혁은 강력히 추진돼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피땀 흘려 기업을 일으키는 기업인들을 누구보다 우대해 주는 교육을 실시하고 그런 사회 풍토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업인이 되는 것이 장래 최고의 희망이라는 말이 청소년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그래야 기업인들이 사명감을 갖고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나 경제 위기를 떨치고 세계로 뻗어가는 힘을 발휘한다. 기업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만드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절실한 것은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핵심 조건은 규제·노사·조세 문제로부터의 해방이다. 우리나라는 규제가 첩첩이 쌓여 기업을 살리기는커녕 숨통을 막고 있다. 고용 구조가 극도로 불안하고 노사간 불신과 대결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세금의 종류는 준조세까지 합쳐 헤아리기조차 어렵고 세무 조사에 걸리면 살아남기 어렵다. 정부·기업·국민 모든 경제 주체가 개혁적 자세로 힘을 모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국가 개조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주5일 근무제, 법인세 인하, 경제특구 등의 현안도 이런 틀 안에서 추진돼야 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8.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