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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깃발` 이 바로서야
2003-06-23
`대통령 깃발` 이 바로서야 법과 원칙을 천명했던 정부의 의지가 또 다시 노동조합의 힘에 밀렸다. 정부는 22일, 3년간 독립경영·고용승계 보장, 파업 관련 민·형사상의 책임 면제 등 조흥은행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노조의 ‘벼랑 끝 전술’이 꾸준히 개가를 올리고 있다. 아무리 시스템이 잘 짜인 조직이라 하더라도 이를 운영하는 대장의 깃발이 바르게 서 있지 못하면 그 조직은 표류하게 마련이다. 가장이 바로서지 못하면 가정이 표류하고, 장관이 잘못 서면 그 부처가 표류한다. 한 나라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그 나라의 수반이다. 한국은 대통령이다. 국가 운영의 큰 틀과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은 사실상 대통령으로부터 발원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깃발에 따라 한국의 운명은 크게 좌우된다. 보좌관들이 아무리 뛰어난 지략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의 뒷받침 없이는 결코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모든 중요한 결정은 결국 대통령이 내리게 되고 그에 따른 영광과 책임 또한 대통령의 몫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의 자리는 영광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고독하고 용기와 결단을 요구하는 고뇌의 자리이다. 미국에는 눈물을 보이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불문율이 있다. 대장이 울어버리면 나머지 사람들은 갈 곳이 없게 되는 까닭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대통령 못해먹겠다…’라는 표현은 부적절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매일매일 표류하고 있는 전형이다. 두산중공업 노사분규를 시발점으로 하여 철도 구조조정이 물 건너가더니,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로 전국이 수송 대란에 휩쓸렸다. 어디 그뿐인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시행을 반대하는 전국교직원 노동조합은 연가투쟁에 돌입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하는 농민들은 전국의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교통을 마비시켰다. 두산중공업 문제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노사 자율협상의 틀을 깨고 노동부 장관이 직접 개입하여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것도 매우 높이. 그리고 노동부 장관은 노동부는 노동자 편이라고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정부 부처가 어디 어느 한 편을 비용 삼아 다른 한 편의 이득을 챙겨주는 조직인가. 이제 어느 문제에서나 이해 당사자 간의 자율적 해결은 어렵게 될 전망이다. 각종 이해 집단은 걸핏하면 장관 나와라, 대통령 나와라 할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라고는 하지만 조흥은행 노조는 청와대에 사표를 낸다고도 했다. 이 모든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결국 현 정부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식체계에 그 근원이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오늘의 무질서한 형국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 시작과 함께 이미 잉태됐다. 분배 위주 정책을 펴겠다거나, 향후 5년간 노사가 대등한 관계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등의 대통령과 인수위원들의 어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제 대통령을 비롯한 현 정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식 체계가 진정 국민들의 삶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튼튼한 논리와 역사적 경험으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인지, 이룩하고자 하는 세계가 인간 세상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허구의 것은 아닌지, 이른바 보수우익이라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과연 들을 것이 전혀 없는 것인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새 정부가 출발한지 겨우 4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그야말로 정권 출범 초창기 중에서도 초창기에 불과하다. 선명한 기치 아래 국민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며 담대하고 역동적으로 나아갈 때다. 그런데도 매우 긴 세월이 지나간 것처럼 지루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지금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21세기에 무엇을 먹고 살아갈 것인가 하는 매우 절박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개발도상국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의 뒷덜미를 잡을 만큼 무섭게 추격해 오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나눠먹기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왼쪽으로 튀느냐 오른쪽으로 튀느냐에 따라 대서양에 합류하기도 하고 태평양에 합류하기도 한다. 지금 대통령의 깃발은 어느 쪽으로 나부끼고 있는 것인가. 방향이 틀렸다면 지금 바로 U턴을 해야 한다. 김영용 (전남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6. 23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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