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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경제비전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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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12 |
| 총체적 경제비전이 없다 지난 2월 말에 출범한 신정부가 100일 안에 멋진 국가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높았다. 욕심을 좀 더 내어 신정부의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법률의 국회 통과를 예상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가 지향하는 국가의 미래상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보이지 않는다. 일부 신문과의 부질없는 싸움만이 계속되고 있으며 정책 혼선은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취임후 100일은 국가의 비전이나 발전 전략을 내놓기에 짧은 기간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기간을 제외하고 선거일 이후부터 치더라도 이미 반년의 세월이 거의 다 지난 것 또한 사실이다. 더구나 우리의 정치·경제적 현실은 소걸음 걸으며 여유를 부릴 만큼 한가롭지 않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위기 상황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며, 사회 기강이 급속히 풀어지는 가운데 민생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취임후 100일 안에 뉴딜정책을 뒷받침하는 대부분의 법률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니 부러운 마음이 든다. 경제가 나빠져 민생이 고달파지는 것은 위정자들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경제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거나 경제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경제정책만으로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소비 감소, 투자 위축, 부동산 경기 과열, 금융 불안, 노사관계 불안 등의 경제 문제는 상당 부분 북한의 핵 문제, 미군 재배치, 한반도 주변의 군사력 증강, 정부의 이념적 모호성, 정부의 신뢰 상실 등의 비경제적 요인에 원인이 있다. 따라서 경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정책 외에 비경제적 요인의 개선이 필요하며 사정이 좋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화할 수도 있다. 경기를 부양하고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몇 가지 정책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이 단편적·기술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나마 효과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아 우리에게 불리한 거시적 경제 여건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예를 들면, 재경부가 제안한 법인세율의 연차적 인하는 소득 분배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부적절한 이유로 대통령의 반대에 부닥쳤다. 1가구 1주택 면세제도의 폐지는 실행 가능성도 높지 않지만 소득 과세의 정상화 외에 장기적으로 부동산시장의 안정에 기여할지는 의문이다. 설사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면세제도의 폐지는 먼 훗날에나 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당장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증대로 투자심리가 극도로 약화된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경기 부양에 큰 힘을 발휘하기 어렵지만 그나마 부동산시장의 안정화 정책과 모순 되는 문제가 있다. 그보다 더 급한 것은 카드채의 대규모 부실로 인한 금융 경색을 해소하는 일인데, 정부는 근본 치유보다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구태의연한 물타기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또한, 카드채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자금의 투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있어도 금융감독 기관과 관련 기업에 대한 추상같은 책임 추궁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경제정책이 난맥상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를 보는 시각과 정책의 기본 틀에 있다. 무엇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편향된 이념적 프리즘을 버리고 사실 관계를 중심으로 경제 현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은 우리의 기업이다. 감정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고쳐서 잘 활용하는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근로자는 약자이기 때문에 보호돼야 한다는 도식에서 벗어나 근로자의 권익과 기업가의 이익을 잘 조화시킴으로써 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발할 수 있다면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 장기적으로는 근로자에게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재경부의 정책이 하루 만에 청와대에서 뒤집히고 부처 이익에 따라 장관들이 편을 갈라 서로 다른 시위대에 가담하는 형국이 방치된다면 정책을 논해서 무엇하겠는가.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5년 전의 경제 위기 이후 남발된 각종 임시방편들을 정리하고 재정·금융·사회복지·노사관계 등 주요 분야의 경제정책 과제를 망라하여 시장경제 원칙이 선명한 종합적인 청사진을 만들어야 한다. 이 때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구해야 하며, 소위 ‘코드 맞는’ 사람끼리 정책 논의를 독점해서는 안 된다. 일단 선택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 나가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윤건영 (연세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6. 11 포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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