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보도자료
사정, 독립기구에 맡겨라
2003-02-17
사정, 독립기구에 맡겨라 노무현 차기 정부가 청와대의 사정팀을 부활시켜 운영할 방침이라고 한다. 1972년 설립, 그간 지속적으로 운영돼 왔으나 2000년 10월 옷로비사건 후 해체됐던 사정팀을 차기 정부가 부활시키려는 이유는, 이 팀의 해체 이후 권력 주변의 비리를 상시 점검하는 기능에 구멍이 생겼고, 그 결과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를 막지 못했다는 진단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청와대뿐만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이 부패 예방과 통제를 위한 자체 감찰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특히 대통령 친인척 주위에 이권을 쫓아 날아드는 파리 떼가 많은 것을 감안할 때, 비서실과 친인척을 대상으로 하는 예방적 내사 기능의 부활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러한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사정팀의 부활에 대한 여론은 부정적이다. 비리은폐, 표적조사, 불법연행 등 소위 사직동팀의 폐해 재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먼저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 발생 가능성을 사전에 인지하고 이를 통제하기 위해서 설립된 사정팀이 오히려 수집된 정보를 이용, 이미 발생된 비리를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이 아들들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받아들이려는 태도가 보이지 않자 수집된 정보를 은폐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사정기관의 상위에 있는 대통령이 직속의 사정팀이 작성한 정보를 이용하여 사정기관을 통제할 경우의 은폐가능성도 지적될 수 있다. 물론 차기 정부는 이러한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지 모르나, 모든 사람이 그리고 어느 때나 올바르게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잘못될 가능성은 있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우려되는 것은 정권안보 차원의 사정 문제다. 역대 정권에서 청와대 사정팀은 정권 안보 차원의 정보 수집 및 수사 기능을 맡아 왔다. 이른바 고위 공직자 비리, 정적의 정치 자금 내사, 재벌 기업 비리 등을 주로 담당해 왔다. 이렇게 수집된 자료는 정권 안보 차원에서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 사정 작업의 기초 자료가 됐고, 또 대기업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청와대 사정팀에 대해서는 정권안보 차원에서의 기획 사정, 표적 사정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신과 피해의식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정치인과 민간인은 사정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는 여전히 이 대상에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사정 업무의 기획과 내각 사정업무의 조정을 주요 기능으로 밝히고 있어 기획 사정에 대한 우려를 하게 만든다. 아울러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상시적으로 수집, 이를 인사관리 등에 활용하거나 또는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대통령의 권력 확대와 통치에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단기적·대증적 정권안보 위주의 사정이 주가 되어, 부패 문제 그 자체를 해결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청와대 사정팀의 기능은 대통령 비서실과 친인척에 대한 예방적 자체 감찰 기능으로 제한하고, 이들과 고위 공직자 등에 대한 사정의 주체는 청와대로부터 독립적인 기구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국회 법사위에서 여야 의원들이 대통령의 친인척이 저지른 비리 행위에 대한 조사를 전담하는 기구를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신설하도록 하는 부패방지법 개정안을 합의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으로 이해된다. 아울러 그 규모와 위치 등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고위 공직자에 대한 조사와 수사를 담당하는 비리조사처의 신설이 제기되는 것도 청와대로부터 독립적인 기관에 의한 사정의 필요성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역대 정권이 늘 되풀이해 왔던 정권초기의 강도높은 사정과 중·후반기의 부패연루의 반복과 같은 정권안보 차원의 사정패턴을 시정하기 위해서도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적인 기구에 의해서 사정이 기획돼 분석·평가되고 집행되는 체제가 돼야 한다. 차기 정부는 청와대 사정팀의 부활보다 사정기관간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부패방지시스템의 재설계를 우선적으로, 그리고 조속히 서둘러야 할 것이다. 대통령실과 각 사정기관이 직접적인 부패통제의 대상이 되는 그러한 사회와 시스템이 이뤄져야, 부패 없는 맑은 사회가 건설될 수 있는 것이다.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2. 17 포럼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