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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송금 `진실`이 국익이다
	2003-02-11
北송금 `진실`이 국익이다 대통령의 시인에도 불구하고 자고 일어나면 대북송금에 관한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액수도 2억달러 수준이 아니며, 현대상선만 송금한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 또 이번에는 남북 정상 비밀 예비회담에 참여한 사람들 가운데 현대 관계자들이 끼여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내일이면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두려워진다. 대통령은 과연 대북송금에 관한 전체의 진실을 밝힌 것일까. 그런데도 여기에 책임이 있는 청와대로부터는 ‘통치행위’니, ‘국익’이니, ‘공개되면 현대가 망한다’는 등의 구차스러운 말만 들린다. 게다가 남북 장관회담은 물론, 남북 정상회담까지 한 마당에 북한이 ‘불법 단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까지 들려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여·야 정치권은 어떤가. 특검제니 국정조사니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은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쪽도 마찬가지다. 고건 총리 지명자의 국회 임명동의와 새 정부를 출범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니 만큼 몸이 달아 있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며 해법찾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 사태에 직면한 국민의 정서를 헤아려 보았는가. 국민은 어느 날 감사원의 발표라는 형식을 통해 느닷없이 이 소식을 접했고 대통령은 짤막하게 통치행위라고 자기정당화를 했다. 그 후 검찰은 수사를 포기했다. 이 황당함과 허탈감을 어쩔 것인가. “북한에 1달러도 보내지 않았다”고 강변해왔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북한에 보내진 정황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으니, 대마초를 입에 대기만 하고 흡입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무슨 다를 것이 있는가. 청와대와 여당이 국민을 속여 왔고 또 지금도 이 중대한 사실을 그냥 덮어보려고 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 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일이다. 새 정부 출범이 아무리 바빠도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지금 국민은 해법찾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북송금의 진실에 관심이 있다. 즉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얼마만큼의 돈을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북한에 보냈는가. 육하원칙에 따라 대통령의 입으로부터 듣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알고 싶어하는 국민의 정서를 단순히 ‘끓는 냄비’로 생각하고 언젠가 식기만을 기다린다면 잘못이다. 또 이제까지 부인하고 감추어 온 것도 부족하여 비공개로 증언을 하겠다고 한다. 그것이야말로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일이 아닌가. 이번 사태에서 실로 유감스러운 일은 국정 책임자들이, 국민을 국익에 대하여 무지하고 분별력도 없으며 남북 관계의 미묘성에도 둔감한 존재, 야당의 무책임한 정치 공세에 흥분만 잘하는 사람들로 치부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통치행위’니 ‘국익’이라는 말만 꺼내면 국민이 주눅들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국민에게는 남북 관계의 미묘함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도 있으며, 야당의 피리 소리에 춤만 추려고 하는 존재가 아니다. 국익이란 ‘선험적으로’ 결정돼 있는 게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국익을 결정하는가. 대통령이 결정하는가, 국회가 결정하는가, 언론이 결정하는가. 국익 결정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물론 국민이라는 범주는 단일적 범주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비판적 논의와 담론 속에서 결정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익을 유권적으로 결정할 ‘철인왕’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상황에서 최선의 국익은 정직이라고 생각한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인 것이다. 국민 앞에 대북송금의 선(先)이 이렇고, 후(後)가 이렇다는 점을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정치적 해법은 그 후에 찾을 일이다. 그런데도 대북송금에 관한 문제가 ‘숨은 그림찾기’나 ‘진실게임’처럼 진행되고 있다니…. 국정 책임자들이 진실을 말하면 국익이 손상된다고 말하고 있으나 진실을 말하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일찍이 플라톤은 ‘고상한 거짓말’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내용은 거짓말이지만 목적이 좋은 경우다. 대북송금이 여기에 해당될까. 그렇지 않다. 대북송금 목적 자체의 순수성까지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인 까닭이다. 우리는 대북송금이라는 사실을 두고 분칠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자체를 듣고 싶은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2.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