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보도자료
집단소송의 함정
2003-02-06
[자료집]청년정책 토론회.pdf
2016_0829.jpg
집단소송의 함정 흔히 미국을 ‘법이 지배하는 나라’라고 부르지만 요즘 미국인들은 미국이 ‘변호사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한탄한다. 변호사가 넘치고 온갖 소송이 난무해서 ‘소송 지옥’이 됐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 지경이 된 데는 증권거래법·제조물책임법·환경법·장애인보호법 등 많은 특별법이 이들 법규를 위반한 자에 대한 소송을 허용하고, 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너그럽게 인정하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은 집단소송제도를 도입해서 어떤 사유로 피해를 본 집단에 속하는 사람이면 소송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정부가 규제행정으로 대처할 사항을 소송에 맡겼으니 각종 소송이 폭주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송 남용으로 미국 사회가 무너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는 결코 엄살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집단소송 남용에 대한 비난이 가장 거세다. 현재 미국 의회에는 집단소송을 제한하기 위한 법안이 계류 중이며,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신문들도 집단소송을 개혁해야 한다는 사설을 여러 차례 게재한 바 있다. 미국 변호사협회도 집단소송을 개혁하기 위한 위원회를 발족시켜 대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소비자, 소액주주 등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장치라던 집단소송이 비판의 십자포화를 맞게 된 것은 그것이 변호사의 돈벌이 장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일반 소송에서 변호사는 자기에게 사건을 맡긴 의뢰인을 대리하는 데 비해 집단소송은 변호사가 원고를 모아서 사실상 소송을 주도한다. 원고 개인이 주장 할 수 있는 피해액은 적더라도 피해자가 워낙 많다 보니 소송 액수는 커지게 되고 그러면 변호사의 성공보수도 천문학적 액수가 되는 것이다. 집단소송의 상대방인 대기업은 그런 소송이 제기됐다는 사실 자체에 곤혹스러워서 판결 이전에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특히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흔히 협상으로 타결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들은 거액을 챙기고, 다음번 소송의 희생물을 찾아 나선다. 이들은 집단소송에 너그러운 법원을 찾아 다니면서 제소하는 ‘소송지(訴訟地) 쇼핑’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집단소송을 통해 실제 피해자가 얻는 것은 사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디오 렌털 체인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의 피해자들은 비디오 한 개 거저 빌리는 쿠폰을 받았고,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한 소송에선 새 차를 사면 150달러를 깎아 주는 쿠폰을 받았다. 반면 변호사들은 수백만달러에서 수천만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손에 쥐었다. 결론적으로 집단소송은 그 고상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남용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이 100%인 제도다. 미국의 저명한 법학자들은 시도는 좋았지만 운영상 악용된 법률제도로 집단소송을 뽑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집단소송을 유지해야 한다는 로비 집단도 있다. 소송으로 먹고 사는 변호사 모임인 미국 재판변호사협회가 그러한데, 이들은 집단소송개혁법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민주당에 거액의 선거자금을 기부했다. 이 같은 미국의 사정으로 보건대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하려는 것이 과연 타당한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물론 허위공시나 분식회계 등은 사라져야 할 해악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를 집단소송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것은 위험해 보인다. 일단 증권 집단소송이 제기되면 사실의 진위를 떠나 해당 기업의 주가가 폭락할 수 있으며 기업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변호사에게 거액을 건네게 될 것이다. 변호사들이 전문적 ‘기업 사냥꾼’으로 변신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미국에선 어떤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면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나보다 하고 집단소송을 제기하고, 그러면 주가가 더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를 보고 집단소송을 낭만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李相敦 (중앙대 법학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3. 2. 6 시론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