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보도자료
北송금, 통치행위 아니다
2003-02-05
北송금, 통치행위 아니다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인가. 현대상선의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돈을 받았다는 북한까지 위협적인 언사로 국내 논쟁에 끼어들면서 국민의 혼란과 관심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논란의 초점은 두 가지다. 현대상선의 대북 거액 뒷거래가 과연 통치행위인가 하는 것과, 통치행위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외교·恩赦權 등 일부만 인정 통치행위 이론은 절대군주 시대에 정립된 고전적인 이론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군사통치 시대에 대통령이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한 계엄선포 행위 등을 정당화하기 위해 통치행위 이론을 끌어들였고, 그 당시 사법부도 계엄선포 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를 기피하는 이유로 이 이론을 원용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부 권위주의 국가에서 독재정치의 수단으로 통치행위 이론이 간혹 원용되고 있을 뿐 법치주의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폐기된 이론이다. 일부 학자들이 아직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 범위를 매우 한정하는 것이 관례다. 국가.정부 승인 등 외교행위, 대통령의 은사권(恩赦權) 행사 등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따로 직.간접의 정치적인 통제수단이 마련돼 있는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만 예외적으로 통치행위를 인정하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헌법재판이 활성화하면서 헌법 판례를 통해 통치행위 면책론을 배격하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93년 금융실명제를 실시하기 위해 발동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을 헌법재판소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아 심판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현대상선의 대북 거액 뒷거래는 고전적인 통치행위 이론에 비춰 보아도 통치행위로 설명할 수 없다. 우선 통치행위이기 위해서는 최고 통치권자가 고도의 정치적인 결단에 의해 자신의 이름으로 행한 공권력 행사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 문제에 관해 자신의 직접적인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기 때문에 우선 주체의 면에서 통치행위의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것이다. 통치행위로 밀고 나가려면 우선 현대상선의 대북 뒷거래가 대통령 자신이 기획하고 지시해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현대의 대북 뒷거래는 사기업체인 현대상선이 대북 경협사업의 일환으로 행한 불법적.사적인 경제활동에 불과하다. 그것이 설령 남북화해와 교류협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하더라도 불법적인 사경제 활동의 성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기업체의 모든 경제활동은 불법적인 수단으로 뒷거래를 통해 이루어져서는 안된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시장경제질서는 경제활동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그 생명으로 하기 때문이다. 혹시 현대상선의 대북 뒷거래가 대통령이 기획하고 지시해서 이루어진 일이라고 밝혀지는 경우에도 통치행위로 볼 수 없다. 고전적인 통치행위 이론에 의하더라도 통치행위는 어디까지나 공권력 작용인 것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이다. 현대상선의 대북 뒷거래는 그 형식 면에서 분명히 공권력 작용은 아니다. 私益과 결부된 대북 뒷거래 나아가 통치행위이기 위해서는 통치권자의 고도의 정치 결단적인 행위가 통치권 행사의 정상적 절차를 거쳐서는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시간적.정황적 상황 아래서 이루어진 것이어야 한다. 남북 경협자금이라는 2억달러 대북 뒷거래는 이러한 상황적인 전제조건과도 거리가 멀다. 더욱이 통치행위는 그 행위의 동기가 조금이라도 사익과 결부된 것이어서는 안된다. 현대상선의 대북 뒷거래는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기업체인 현대의 경제적인 이익과도 관련이 있을 뿐 아니라 노벨상에 집착한 대통령의 개인적인 목적까지도 함께 작용한 것으로 일부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모로 보나 통치행위일 수 없는 일을 통치행위라고 견강부회(牽强附會)하면서 정치적인 해결을 모색할 것이 아니라 검찰의 신속하고 공정한 수사를 통해 국민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이 국민을 대통령으로 생각하는 새 정치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許營 (명지대 초빙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3. 2. 5 시론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