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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거론`엔 까닭 있다
2003-01-16
`내각제 거론`엔 까닭 있다 내각제 논의가 급부상하고 있다. 대선이 끝난 지 얼마 안 되는 시점에 정치권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온 내각제 논의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일단 시기적으로 보아 부적절하다는 느낌이 있다. 새 대통령이 막 뽑혔는데 권력 구조에 관한 논의를 한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또 정략적 고려도 빼놓을 수 없다. 앞으로 5년 동안 권력의 음지에서 살아야 할 한나라당 의원들, 또 선거에서는 이겼지만 정당 개혁 차원에서 물러나야 할 민주당 의원들의 입장에서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접근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략적 계산을 넘어 실사구시의 의미를 갖고 있는 측면도 있다. 이미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가 제시한 국회의원 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로의 전환, 2006년 개헌 마무리 발언 등에서 내각제 논의와 연계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지금의 논의는 내각제 자체가 갖는 장점보다 대통령제에 내포되어 있는 문제점을 교정하려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된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관행적으로, 또 제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에서 원론적 의미의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비교·검토하는 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제왕적 권력 때문에 미국 이외에서는 성공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민주화 이후의 우리 대통령들도 모두 제왕적 권력을 즐기고 휘둘렀기 때문에 ‘개혁’과 ‘신한국’ 혹은 ‘제2건국’ 등을 외쳤지만 단순히 구두선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정치 개혁의 문제는 권력 독점이다. 물론 노 당선자도 인터넷 정치 활성화나 ‘토론 공화국’ 등을 강조하며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서 분권을 원한다면, ‘책임총리제’와 같은 제도의 운영이 바람직하다. 책임총리제에서는 총리가 ‘일인지하(一人之下)’로 대변될 만큼 대통령과 상하 관계로 규정되지 않는다. 또 국회의 독자적 권한 행사를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맞으며 현 체제 아래서도 가능한 제도다. ‘대선민의’도 있지만 ‘총선민의’도 있는 법이다. 여소 야대의 국회에서 총선민의를 존중한다면 책임총리 혹은 ‘분점정부’의 개념에 따라 야당 총리가 나올 수도 있다. 사실 프랑스도 대통령제지만 국회에서 야당이 과반수를 점했을 때 여당 총리를 내야 할지 야당 총리를 내야 할지는 법으로 규정된 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총리를 내세워 ‘동거 정부’를 만들었다. 우리의 경우 새 총리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는 것으로 만족할 뿐, ‘책임총리’와 거리가 멀다면, ‘안정총리’든 ‘개혁총리’든 예전처럼 ‘대독총리’나 ‘의전총리’와 달라질 것이라는 보장은 없는 셈이다. 오히려 대선의 승자가 모든 걸 독식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인수위의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크고 새 정부 출범 이전에 벌써 공무원이나 재계 길들이기에 나선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다. 노 당선자도 이번의 승리를 ‘절반의 승리’ 또 ‘절반의 대통령’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유권자들의 절반 정도만이 그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 ‘절반의 승리’라고 볼 수 있다. 내년 총선 이전까지 여소야대의 국회와 더불어 국정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권력을 노 당선자의 말처럼 절반 정도로 행사할 것인지에 있다. 우리의 정치 문화나 관행은 제왕적 권력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권력 분산을 외치면서도 그 모든 권력을 조정하고 아우르는 절대권력의 필요성을 수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내각제 논의가 불거진 데는 권력 이동이 한 제왕적 권력에서 또 다른 제왕적 권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내각제 논의의 진짜 화두는 권력 이동이 집중된 권력에서 분권적 권력, 제왕적 권력에서 민주적 권력으로의 이동을 원하는 목소리에 불과하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달을 가리킬 때 가리키는 ‘손’을 보지 않고 ‘달’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치와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각제 논의는 노 당선자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켜야 하겠다는 것이 아니고 대통령직을 보다 분권형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바람에 불과하다. 적어도 ‘책임총리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내각제 논의는 그 일정한 목표를 달성한 셈이 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1. 16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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