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정국, 어디로 가야 하나?

- 끝없는 소모전 이젠 그만, 다양성 수용하는 정부 되어야 -

최근의 '언론정국'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나라의 장래가 자못 걱정스럽다. 언론개혁인지, 언론탄압인지, 언론사간의 전쟁인지, 사회내분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방송사와 마이너 신문사의 보도태도로 인해 초점이 `신문사 탈세'로 옮겨지면서, 언론개혁의 본질에 대한 시민들의 판단조차 흐리게 하고 있다. 국민들의 정확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일들이 언론계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20일 국세청은 세무조사 대상 23개 언론사에 대해 5,056억원의 세금을 추징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사 법인에 대해서 무가지 배포, 탈세ㆍ탈루, 수입축소, 계열사간 부당행위, 비업무용 부동산 등과 관련해 모두 3,229억원의 세금을 물리고, 대주주에 대해서는 주로 증여와 관련해 1,827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국세청의 이 발표를 KBS, MBC, YTN 등 방송사는 이례적으로 생중계 보도했다. 숫적으로 다수인 마이너 신문들은 자신들은 마치 비판에서 자유로운 듯 메이저 신문을 비난하고 나섰다.

'언론개혁'을 요구해온 시민단체들의 행동도 이상스러워졌다. 그들은 지난 2월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결과의 투명한 공개를 요구해 왔다. 당사자를 고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법률상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할 수 없다는 당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국민의 알권리가 납세자 개인의 정보보호에 우선한다"는 주장을 거듭했었다. 4개월여 동안 이런 내용을 담은 성명을 쏟아냈고, 각종 집회를 열기도 했다. 그 후 국세청은 6개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하면서 세무조사 결과를 공개하였고, 나머지 17개 언론사에 대한 조사내역은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대부분 시민단체들은 더 이상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그들이 주창한 `결과의 투명한 공개'와는 거리가 먼데도 예상된 반발은 없었고, 있다 해도 그 목소리는 극히 낮고 미온적이었다.

언론개혁을 둘러싸고 언론계 내부가 이처럼 갈라져 있고, 시민단체들의 잣대도 고무줄처럼 되어 버렸다. 게다가 언론개혁에 대해 다수 시민들은 냉소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우리 사회는 더욱 분열되고, 대립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국제적으로도 국제언론인협회(IPI), 세계신문협회(WAN)를 포함한 언론단체와 타임지, 월스트리트 저널 등 유력지, APㆍ로이터 통신사 등이 `비판언론에 재갈물리기' 햇볕정책 싸고 언론과 대립, `노벨상 대통령 타격' 등의 표현으로, 언론개혁을 둘러싼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의 언론자유가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정부의 '언론개혁'은 과연 올바르게 시행되고 있는가? 언론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세무당국이 "조세정의를 실현하겠다"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개혁과정에서 정부가 언론의 자유, 취재보도의 자유를 훼손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다. 그런데, 지금 중요한 것은 일련의 세무조사와 검찰수사가 정부의 언론정책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라는 사실이다. 더욱이 '작금의 정부측의 대언론 행태가 어딘지 개운치 않은 느낌을 준다'는 견해가 점차 그 힘을 얻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한마디로 '언론의 자유와 비판이라는 본질적 기능에 대한 충분한 인식이 없는 한 어떤 정부의 언론정책도 성공적일 수 없다'는 역사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돌이켜 보건대, 1961년 군사정권이 단행한 `언론사 일제정비'와 1980년 `언론통폐합'이라는 정부의 언론개편이 모두 '언론탄압'이란 오명만 남기고 실패했음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처럼 불행한 언론사태가 반복되는 원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와 정부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언론의 다양성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자신의 의견과 다른 생각은 모두 반개혁, 수구세력으로 매도하면서 획일적인 생각만 강요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이 정권에 비판적인 글을 게재한 작가를 매도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가장 비근한 사례일 것이다. 법을 모르는 필부도 아니면서 헌법에 규정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국민들은 의아스러움을 넘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또 지식인들이 신문에 기고한 이런 저런 글을 보고 언어폭력으로 대항하는 일부 네티즌의 행태나 특정신문불매운동 전개도 역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여러 시각의 자유로운 언로가 보장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금 '언론개혁 세력들'은 비판적인 신문들에 대해 `수구언론'이라는 '낙인'을 찍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 신문이 부당하다는 여론을 형성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이 역시 다양성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이런 식으로 하자면 이러한 매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신문이 과연 있을까?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21세기 정보사회에 앞서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회 각 영역을 다양화하고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정부 언론개혁의 참 뜻이 `독과점 방지'이든 무엇이든 간에 언론의 감시ㆍ비판기능을 위축시키는 조치는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현 '언론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정부는 후일 언론자유와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보다 신중하고 공명정대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동시에 공권력의 집행에 따라 결코 언론의 비판적 감시 기능이 훼손돼서도 안 된다. 또한 정부의 언론정책 수행이 지금과 같은 언론매체간의 싸움을 야기해서도 안될 것이다. 나아가 그것이 국론분열로 이어져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렇다면 이처럼 `있어서는 안 될 사태'를 예방 내지 극복하고, 민주적인 토양 위에서 자유언론이 꽃피게 하기 위해서 언론정책의 기본방향은 어떠해야 할 것인가?

첫째, 언론개혁의 논리가 무엇이든지 정치권력이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 되며, 그로 인해 언론이 위축돼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점이다. 서구에서 민주주의의 발달은 늘 언론자유의 신장과 보조를 함께 했으며, 언론자유의 핵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치권력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公器)이다. 그러므로 언론의 자율성을 해치고 신문의 입지에 타격을 주면서까지 정부가 주도하는 언론개혁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민 어느 누구도 조세권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신성한 조세권이 다른 목적으로 오용 또는 악용되는 일만은 결코 없어야 한다.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유명한 미국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의 말을 새삼 되새겨 보아야 할 때이다.

둘째, 이 시점에서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신문발행 부수의 객관적인 공사(公査, ABC)를 제도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발행부수 공개야말로 언론개혁 조치의 요체인 독과점 방지, 합리적 광고료 책정, 조세정의확립 등의 근본적 개혁을 위한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런 소임은 다하지 않은 채 독과점 운운하며 스스로 폐지했던 신문고시를 부활시키고, 일부 언론사의 존립을 위협하는 과도한 세금추징을 강행한다면, 언론개혁의 진의에 대한 의혹을 떨치기 어려울 것이다. 독자만이 언론개혁의 주체이다.

셋째, 언론사들은 이번 사태를 존립의 위기로 보고 분개할 것이 아니라,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새로운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시대적 환경변화에 따라 스스로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 일부 언론의 잦은 오보와 불공정, 권력기관화, 잘못된 경영상의 관행 등 국민들의 지탄을 받아 온 일들을 자율적인 자정과 개혁을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

넷째, 특히 공공재산인 전파를 국민으로부터 위탁받아 경영하는 방송사들은 방송의 공정성에도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시청자들도 다 알고 있음을 명심하고 자기개혁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다섯째, 사회세력들의 경우에도 시민단체의 순수한 개혁주의가 권력의 포퓰리즘이나 정치권의 정략적인 정쟁에 악용되지 않도록 '참 민주주의실현을 위한 언론개혁'이란 대의명분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자칫 작은 것을 얻고 큰 것을 잃는 우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시민단체의 역할은 시민사회를 균열, 대립, 갈등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의 바탕 위에 성숙한 시민사회를 실현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언론정국으로 파국 직전에 있는 '대한민국'호를 구해내기 위한 대통령, 정부, 정치권, 언론계, 시민단체, 독자 등의 자율적이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 모두가 긴 안목으로 국가와 역사를 보는 여유를 되찾아야 하겠다.

대표집필: 김영신 세종대 신방과 겸임교수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정책대안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