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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감사 회의론
	2002-09-19
국정감사 회의론 지난 16일부터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또 다음달 4일부터 공적자금에 관한 국정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는 모두 국정에 관한 공정 집행 여부를 점검하는 국회의 고유 권한으로, 전자는 정기국회 직후 20일간, 후자는 특별한 사안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조사한다. 이처럼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 국회는 국정 감시를 위한 헌법적 장치에 관한 한, 완벽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라는 ‘쌍칼’을 휘두를 수 있는 국회는 세계에서 우리 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정부를 견제하는 ‘쌍칼’을 가지게 된 데는 유신과 5공을 거쳐 현행 헌법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있다. 하지만, 민주정치 제도가 ‘불신의 제도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만은 아니다. 권력자가 그 권력을 잘 쓰기보다는 잘못 쓸 경우를 대비해서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를 게을리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권이 분립돼 있는 것이 아닌가. 흔히 우리 사회에서는 “너만 믿는다”고 하며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무조건 신뢰를 주고, 나중에 그가 그 신뢰를 배반하면 “죽일 ×” “살릴 ×”하며 펄펄 뛴다. 하지만 신뢰를 주기 전에 십분 경계하여 신중하게 점검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문제는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가 시기적으로 동시에 실시되다보니, ‘죽도 밥도 아닌’ 상황, 즉 부실 국감과 부실 국조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의원의 수는 한정돼 있는데, 두가지 프로젝트가 진행되다보니 힘이 분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관련 행정 부처에서 자료도 잘 내놓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힘이 분산되어 한가지도 똑 부러지게 못할 바에야 차라리 한가지에만 집중하는 편이 어떨까. 또 이번 국감과 국조가 걱정되는 것은 대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있어 국감장이나 국조장이 대선 경연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통합신당론이니 탈당론이니 하여 뒤숭숭하고, 한나라당도 병풍 공방에 좌불안석이다. 한편 여야가 국감장에서 국정 자체에 관한 관심보다 대선용 공방으로 일관한다는 점도 유감이다. 물론 대선전 국감이라고 하여 부실한 국감이 돼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야가 상대방을 공격하고 견제할 때 국리민복의 입장에서 양질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흔히 시장 상황에서 공익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시장행위자들 간에 이기주의적 이익이 경합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야가 대선승리라는 정략적 목적으로 정치 공방을 벌일 때 공익이 산출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엊그제 국감장에서의 여야 대치와 설전은 정치인들이 정략적으로 행동할 때 공익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실상 이 사실은 전통적으로 ‘죄수의 딜레마’ 상황으로 알려져 왔다. 죄수 양자에게 침묵할 때의 형량과 자백할 때의 형량 및 교차할 때의 형량을 정하여 선택을 요구하면 죄수들로서는 자백을 선택한다. 짧은 형량의 침묵이 좋은데도 불구하고 긴 형량의 자백을 선택하는 것은 이기주의적 행위의 결과다. 정당이 대선 승리를 위하여 당력을 집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앞뒤도 보지 않고 대선 승리를 위한 당리당략으로만 일관할 때 최악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왜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하는가? 그것은 결국 국정을 잘 챙겨보겠다는 충정과 의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처럼 ‘권력의 순간’을 장악하고, 니체의 표현처럼 ‘권력에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 그것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국감장이 대선 경연장으로 바뀌는 것을 시비하고 싶진 않지만, 대선 승리가 지고의 가치라는 천박한 ‘승리 이데올로기’가 국감장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다. 민주사회는 경쟁사회이며, 권력을 잡기 위한 경쟁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치 공방으로 인해 국정감사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고 국감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한다면, 우리 나라에만 있는 국정감사제의 존재 이유가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9. 18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