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 > 보도자료
비정상의 정상화
2002-08-13
비정상의 정상화 현재의 고1학생이 치르는 2005학년도 서울대 입시안이 얼마 전 발표됐다. 특정 대학의 입시가 신문의 1면 주요뉴스가 되는 것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만의 특수 사정일 것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서울대 입시가 고교 교육현장과 다른 대학의 입시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관심이 큰 탓으로 논란도 활발하다. 찬반갈린 서울대 논술 부활 그 중에서도 논술고사를 부활하고 수학능력시험의 4~5개 영역을 전형에 반영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다. 새 입시안은 고교 2학년 이후 다양한 선택과목으로 구성되는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되면서 이로 인해 수능시험이 개편되는 데 따른 불가피한 변화다. 즉, 대학에서는 고교 내신의 어떤 과목 성적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수능시험의 언어.외국어.수리.제2외국어.선택(사회 또는 과학탐구)영역 가운데 어떤 영역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정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선 서울대 입시안에 포함된 논술 부활은 새 입시안의 배경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서울대가 올해 입시부터 심층면접으로 대체하며 없앴던 논술을 부활키로 한 것은 시행착오를 바로잡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심층면접이 사고력과 표현력을 충분히 측정키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객관성과 변별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변별력이 약해진 수능시험 이외에 논술을 주요 전형자료로 삼으려는 고육책으로 볼 수 있다. 교과 최소 이수단위를 정한 것이나, 수능시험 반영 영역을 최대한 확대한 것은 7차 교육과정 취지에 어긋나고 수험생의 부담을 키운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점수 따기 쉬운 과목만 선택하는 '과목 편식' 현상이 우려되는데 이를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같은 변화의 밑바탕엔 학생들의 기초학력 저하 현상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깔려 있다. 쉬운 수능과 '한가지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정부 정책이 낳은 결과다. 올해 서울대 공대와 자연대 입학생의 학력평가에서 수학 교양과목 수강자격을 박탈당한 낙제자가 14%에 달했고, 그 비율도 지난해에 비해 2배나 늘었다. 우열반을 편성해 기초를 따로 가르쳐야 하는 대학으로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본보 네티즌 설문조사에서는 논술 부활이 학력 저하현상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는 응답(52%)이 많았다. 일부에선 논술 부활에 대해 "본고사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본고사가 금지된 상황에서 수능 이외에 변별력 있는 전형자료에 대한 욕구가 상존하고, 이미 일부 대학에서 교과지식을 측정하는 형태의 논술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고 학교교육 정상화에 기여하는 논술이 되기 위해선 현재와 같은 형태로는 곤란하다. 주어진 제시문이나 요구하는 논점이 너무 까다로워 채점을 하는 교수조차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고, 특히 학교에서 거의 논술훈련을 받지 못한 수험생들은 벼락치기 과외로 요령을 배워 시험을 치르는 형편이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받은 학생이라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는 논술시험이 되도록 획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물론 일선 고교에서도 독서와 쓰기 훈련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입시 운영도 자율 존중돼야 이제 무엇보다 입시에서 대학의 자율이 존중돼야 한다. 대학마다 전형방법이 복잡.다양해지고 수험생들의 대학.학과 선호도 달라지고 있다. 올해 서울대 공대에서 무더기 등록 미달사태가 빚어진 것은 입시환경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만큼 서울대 나름의 특색있는 입시제도가 필요한 때가 됐다는 신호다. 성적 한가지로 줄 세우는 입시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좀더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했으면 좋겠다"는 신임 정운찬(鄭雲燦)총장의 말은 기대를 갖게 한다. 鄭총장이 강조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입시 운영에도 절실하게 해당되는 말이다. 한천수 (논설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2. 8. 13 중앙포럼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