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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도둑질은 절도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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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12 |
| 사이버도둑질은 절도 아니다? 허락없이 이웃집 전화를 사용하여 국제전화 요금이 잔뜩 부과되게 하였다면 도둑질이 아닐까? 우리 대법원은 도둑질이 아니라고 한다. 이런 연장 선상에서, 최근 대법원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설계도면을 무단으로 절취한 행위 또한 절도죄가 아니라고 판결하여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종이 서류로 된 설계도면을 훔치면 절도죄이나, 컴퓨터상 저장된 설계도면을 훔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니라며 절도죄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지방법원으로 되돌려보냈다. 이론상으로 절도죄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때 ‘재물’은 통상적으로 ‘유체물 및 관리할 수 있는 동력’이고 ‘관리’는 사무적 관리를 제외한 물리적 관리만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다 보니 전화상 음향 송·수신 기능이나 컴퓨터상의 설계도면은 절도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형법 말고 각종 특별법에 규정된 일부 처벌 규정은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들이 여전히 불완전하다는 데서 문제는 생겨난다. ‘컴퓨터 프로그램 보호법’은 프로그램이 아닌, 파일에 저장된 내용물의 불법 취득은 처벌할 수 없다. 저작권법은 전통적 틀이다. 그런데 디지털 시대에 새로운 형태의 창작물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도 있지만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만을 보호하는 것이어서 정보 절도 자체는 처벌하지 못한다. 굳이 형법상 비밀 침해죄 및 업무 방해죄에 문의할 수도 있겠지만 컴퓨터상의 자료가 갖는 재산적 가치 및 침해의 본질을 무시한 채 억지로 접근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결과적으로 실정법이 갖는 현실적인 한계는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현대 사회는 고도의 정보통신에 기반을 둔 지식정보화 사회로 모든 업무가 전자화(digitalize)되어 간다. 더욱이 첨단 정보통신 기술의 격차가 경쟁력의 우열로 이어지고 개인이나 사회의 삶의 질에서부터 생존까지 좌우하는 시대에 이르렀다. 이런 시대에 급속도로 변화하는 시공간이나 각종 행위 개념, 재산 가치에 맞추어 법률이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시대적 과제가 되고 있다. 특히 나날이 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정보 침해 행위를 엄격히 규율하고 한편으로는 지식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률적 측면에서 두 가지 대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죄형 법정주의의 이념을 유지하는 한도에서 확장 해석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이다. 89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복사문서는 문서가 아니라며 형법상 문서 위조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법원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복사 기술이 발달하고 일반인들이 복사 문서에 대한 인식 자체가 변화함에 따라 법원도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 지난 89년부터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복사 문서도 형법상 보호받는 문서라고 법 해석을 바꾼 일이 있다. 확장해석의 전형적인 예이다. 이런 차원에서 사이버상의 정보나 자원도 관리할 수 있는 동력에 포함된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현행 법만으로도 충분히 절도죄로 처벌할 수가 있다. 이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바로 이번에 대법원에 의해 깨뜨려진 하급심의 판결이었다. 하급심은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해석 방법을 택하여 컴퓨터상에 저장된 설계도면을 훔친 행위를 절도죄라고 판결했었다. 둘째는 ‘전자 기록장치에 의한 기록’을 절도죄의 객체인 재물의 범위에 못박거나 특별법에 정보 절도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두는 방법 또한 고려해 볼 만하다. 물론 이익절도에 대한 불명확한 규정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반대론도 있겠지만 일반 시민의 법 의식이 컴퓨터상 저장된 각종 정보도 일종의 재산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보편적인 만큼 입법도 가능할 것이다. 이번 판결에 대한 논란에서 보듯 사이버 공간에서 벌어지는 각종 법률 문제는 새로운 시각과 함께 발빠른 대응을 필요로 한다. 자연과학은 저만큼 달려가고 있는데 이를 뒷받침해야 할 입법이나 재판 단계의 법 적용이 제대로 조응되고 있지 못하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식정보화 사회는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재천 (변호사) 출처 - 문화일보 2002. 8. 10 포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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