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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非理의 구조적 문제
2002-07-29
연예非理의 구조적 문제 권위와 중립성을 내세워온 영국의 BBC가 1973년 뇌물과 섹스 스캔들로 곤욕을 치렀다. 가수와 모델이 돈과 섹스 공세로 BBC 프로듀서들을 매수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프로를 방송토록 한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런던 경시청은 수십명의 연예인과 레코드 판매인 등을 수사해 이들이 프로듀서와 디스크자키들에게 휴가비를 대주고 창녀들을 알선해 혼음을 즐기도록 한 사실을 밝혀내 파문이 컸다. 요즘 한국의 방송연예계는 벌집 쑤셔놓은 듯 소란스럽다. 검찰의 연예계 비리 수사가 대형기획사로 확대되면서 연예PD와 매니저들이 잇달아 소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예인 출연 대가로 금품을 받은 PD와 기획사 관계자들이 구속됐고 수사 진척에 따라 혐의자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연예인과 매니저, 연예PD 간의 ‘검은 거래’는 수차례 수사대상에 올랐으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해 유야무야돼 왔다. 검찰은 이번에야말로 구조적인 연예계 비리를 발본색원하겠다며 대형 연예기획사들을 집중 수사하고 있다. 그동안 소문이 무성했던 가수와 연기자, 매니저와 기획사들의 뇌물공여가 얼마큼 사실로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커버스토리로 다룰 만큼 한국의 연예계는 비리투성이인가. 그에 대한 답은 시청자들이 잘 알고 있다. 연예산업의 소비자이기도 한 그들의 눈에는 대형기획사들의 횡포는 물론이고 지상파 TV들의 연예오락 프로그램 곳곳에서 묻어나는 왜곡현상이 선명하게 읽힌다. 시청자들의 눈살에 거슬렸던, 상식을 넘어선 일들이 마침내 곪아터진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다. 한 대형기획사 소속 연예인들이 지상파 채널의 주말 오락프로그램을 독점한 경우도 있다. ‘패밀리’를 총출동시키지 않으면 출연 않겠다는 기획사 횡포에 시청률을 앞세워온 방송사가 ‘국민의 전파’를 넘겨준 것이나 다름없다. 인기 연예인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된 것도 방송사의 자승자박이지만, 이제는 울며 겨자먹기로 ‘끼워팔기’도 감수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연예계 비리는 금품 수수자 몇명 구속한다고 근절되지 않는다. 이런 고질적인 비리가 독버섯처럼 자랄 수밖에 없는 지상파 방송사 간의 과열경쟁이 해소되지 않는 한 악습은 거듭되게 마련이다. 현재의 채널구조는 2공영 1민영이다.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은 뭔가 달라야 하는데 우리는 똑같이 시청률에 매달려 오락프로 경쟁을 벌인다. 재원을 광고에 의존하다 보니 시청률을 높여야 하고, 시청률을 올리자니 오락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공영이고 민영이고 연예인 잡기에 혈안이 되다보니 연예인 출연료는 천정부지로 솟고 대형기획사만 살찌우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엊그제 나온 신인이 드라마 1회당 1000만원대 출연료를 받는다는 것도 이해가 안가지만, 프로그램 잘 만들어야 할 PD가 인기스타 잡아야 유능하다는 말을 듣는 방송계 풍토도 말이 안된다. 대다수 오락 프로그램을 연예인에게 맡긴 결과, 방송이 그들의 사유물로 인식될 정도다. 대형기획사와 연예PD가 유착되다 보면 재능이 뛰어나도 줄이 없는 연예인들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신인은 소위 ‘PR비’를 엄청나게 써도 반짝 효과에 그칠 뿐이니 수단과 방법이 지능화되는 것이다. 방송사들의 연예인 선발과 출연섭외가 보다 투명하고 공정해야만 비리나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연예계 비리는 지상파 방송의 상업적 과열경쟁이 해소되지 않는 한 척결이 어렵다. 공영은 광고 없이 공익을 우선한 프로그램을 내야 한다. 재원을 광고에 의존하면 상업화되게 마련이다. 공영 하나라도 공영다우면 지금과 같은 오락위주 편성은 개선될 수 있다. 대형기획사들은 엔터테인먼트산업 육성과 한류(韓流) 확산에 기여한 공도 있지만, 독과점 횡포나 검은 거래 의혹을 받아온 만큼 수사를 통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 방송연예계의 금품수수 관행은 전파를 사용화(私用化)하는 악습이다. 돈으로 방송을 이용하려는 행위도 나쁘지만, 돈을 받고 방송을 하는 행위는 더욱 나쁘다. 결국 시청자를 안중에 두지 않다보니 이런 불상사가 터지는 것이다. (정중헌 논설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2. 7. 29 문화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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