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장경제 발전의 걸림돌 公正거래법

기업가 정신을 구속하는 법규를 뜯어고쳐야

기업인의 소유권을 경시하거나 죄악시하는 풍조하에서 누가 투자를 할 것인가. 현행 公正거래법은 사회적 형평성을 강조, 공정한 경챙 촉진에 실패했다

新자유주의에 역행하는 經濟法

경제 활동을 규율하는 經濟法(경제법)은 경제를 살리는 법인가, 경제를 위축시키는 법인가.

全經聯(전경련)과 시민단체가 경제법 개정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全經聯은 經濟法이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위축시켜 경기회복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전면적인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全經聯은 그 대표적인 법률로 公正去來法(공정거래법)을 꼽았다. 공정거래법이 문자 그대로 공정거래를 촉진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규제로 오히려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우리의 경제법이 느슨해 개혁이 지연되고 있다며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본래 經濟法은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사회?경제 시스템 정비 과정에서 처음 등장해, 이후 자본주의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경제 관련 각종 정부 정책을 총칭하는 의미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경제법은 전통적인 회사법뿐 아니라 경제개발과 관련된 산업육성법, 자연독점의 폐해를 줄이기 위한 공익사업법과 경쟁법, 소득분배의 형평성을 提高(제고)하기 위한 사회복지 관련법, 세법 등 많은 법률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가 되었다.

이 경제법은 戰後 경제부흥과 공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강조되고 냉전 체제下에서 체제유지를 위해 강화돼 왔으나 1980년대 후반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경제법 운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상품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해진 세계에서 自國의 경제법은 또 하나의 경쟁무기가 될 수 있다는 국민적 공감대 아래 각국은 자국 기업에게 유리하도록 각종 경제법령을 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美國은 1990년대 초, 대형 항공기 회사의 합병을 승인한 데 이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1996년 미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21세기 경제정책의 핵심 목표라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社의 시장독점 행위를 묵인하는 형태로 결론을 내렸다.

유럽 각국도 경쟁 저해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自國 시장이 아니라 EU 시장 전체를 기준으로 하는 추세이며, 경제력 집중 억제의 전통이 남아 있는 일본 역시 기업조직 변경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고 대기업 주식보유 한도 규제를 폐지하기로 하는 등 經濟法 정비에 노력 중이다.

세계 경제가 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기업에 대한 규제가 조금도 완화되지 않고 있다. 李南基(이남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해 9월12일 한국경제신문에 기고한 시론에서 경제법의 핵심인 公正去來法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개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는 취지의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나라 經濟法은 경쟁 촉진보다는 弱者(약자)보호에 치중되어 있다. 이는 經濟法의 기본 原則과 전적으로 背馳(배치)될 뿐 아니라 「법 앞의 평등」 개념에도 위배된다. 弱者보호 원칙은 시장경제의 미덕인 競爭(경쟁)을 저해할 수 있다. 「법 앞의 평등」이라는 법의 정신에서 평등이란 기회의 균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弱者보호론과는 차이가 있다.

「3强의 법칙」

우리나라 경제법 중에서 약자보호론의 시각이 가장 두드러진 것이 중소기업 관련 法과 公正去來法의 30大 기업집단 지정 제도이다. 이 두 개의 법은 모두 사전에 경제적 强者와 弱者를 구분하여 불평등한 룰을 적용시킴으로써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고 있다.

弱者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사회정의나 도덕적 규범으로는 타당하다. 그러나 「경제적 약자＝보호대상」이라는 동정론적 시각은 소득 再분배의 영역을 통해 다루어질 수는 있으나 경쟁과 효율 촉진을 목표로 하는 경제법에서 다룰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21세기는 경쟁의 개념이 글로벌 경쟁으로 확산되고 있고, 각 업종에서 가장 강한 세 개의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3强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장여건에서 기업의 생존은 경쟁력을 확보하고 빠르게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다.

제도나 법이 원칙을 준수하고 제정 목적에 맞기 위해서는 法집행이 순조로워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제 관련法과 제도는 경제적 파급 효과는 고려하지 않고 정치적 목적에 좌우될 뿐 아니라 선진국의 법과 제도를 무조건적으로 도입하는가 하면, 인기에 영합하기 위해 수많은 제도와 법을 매년 개정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경제 관련法은 全세계의 제도를 종합한 百科事典(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며 이를 집행하는 담당자나 관련 경제 주체는 어떠한 법과 제도가 있는지 모를 정도다. 경영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좁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어떠한 제도가 신설되고 변경되었는지를 따라가기 벅차고, 정부 담당자는 기업이 요구하여도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기 일쑤며, 개개인은 자신이 연간 지불하는 각종 세금의 종류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을 정도로 복잡하다.

경제법의 정치적 從屬(종속)은 법과 제도의 잦은 개정을 수반해, 많은 사람들이 법에 신뢰를 갖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면 공정거래법의 出資(출자) 총액제도는 1986년에 처음 도입되었는데 현재까지 네 차례의 개정을 거쳤으며, 현재 또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심지어 1998년에 폐지하였다가 1999년에 부활을 결정했을 정도이다.

이는 公正去來法이 경쟁에 대한 원칙 준수보다는 정치적 상황이나 집권자의 의도에 따라 기업집단을 제재하는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정치적 목적에 따라 법을 자주 개정하다 보니 경제 主體들은 조만간 법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됨으로써 법의 권위가 실추되고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규제의 악순환이 초래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위기 수습과정에서 정부의 편의주의적 정책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 사례는 적지 않다. 短期(단기) 외환수급에 직접적 원인이 있었던 외환 위기에 대응하여 행정주도의 기업구조조정에 치우친 나머지 巨視的(거시적)?中長期的(중장기적) 산업구조조정에 소홀해 결국은 국가의 성장 잠재력 약화를 초래하였다.

행정 주도의 도식적인 기업구조조정은 산업정책 측면의 고려 없이 철저히 금융정책 논리 아래 추진됨으로써 국가 산업구조의 비전 제시와 업계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유도하지 못해 실패로 끝났다. 인위적이고 불완전한 정보에 입각한 구조조정(빅딜 등)으로 국가 재정은 파탄되고 기업활동은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반도체 사업은 정부가 개입 안 해 성공』

반면에 집권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영역에서는 부처 간의 법률 조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법률이 쏟아졌다. 외환위기 이후의 외자 유치와 벤처기업 육성 정책이 단적인 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財界에서는 『반도체와 정보통신 산업은 정부가 뭐가 뭔지 몰라서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규제는 獨寡占(독과점) 등으로 시장이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시장 실패를 보정하기 위한 차선의 수단이다. 정부 규제가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좀더 나은 자원 配分(배분)이 달성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의 관료주의적 행정규제는 그 취지와는 정반대로 규제되어야할 규제 대상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용하여 被規制者(피규제자)의 시녀가 되는 예가 허다하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파킨슨은 일의 분량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과 관계없이 공무원의 수는 증가한다는 것을 통계로써 증명하였다. 밀턴 프리드먼은 『기업은 경영이 나빠지면 그 규모를 축소하지만, 정부는 경영이 나빠지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구를 더욱 늘리는 경향이 있어 정부 실패의 악순환이 시장을 非효율적으로 만든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모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문제의 발생이 시장 실패인지, 정부 실패인지의 여부도 판단하지 않은 채 법과 제도를 통해서 수정하려고 했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 단계에서 자원의 통제와 집중이 필요한 시기가 있었고, 이러한 정부 규제가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부가 처리해야 한다는 정부 만능주의 사상이 강하다.

그러나 경제 규모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정부의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경제발전 단계에서 수행된 과도한 정부의 자원통제가 지속됨으로써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왜곡된 기업觀과 反기업정서

자본주의의 핵심은 企業이다. 기업이 강해야 국가도 강하고 개인도 부유해진다. 資本主義를 신봉하는 국가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명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말로는 자본주의면서도 실제 국민의 보편적 情緖(정서)는 그렇지 못하다.

외국 여행을 나간 이국 땅에서 삼성, 현대 등의 간판을 보면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끼면서도 고국에 돌아와서는 재벌을 욕한다. 그러면서도 자식들이 삼성, 현대 등 대기업에 입사하기를 희망한다. 철저한 이중적 정서다.

기업에서 利潤創出(이윤창출)의 동기를 빼앗아 버리면 그 나라 경제는 서서히 멈추게 된다. 現정부는 시장경제를 강화한다면서 시장경제의 꽃인 기업을 더 못살게 굴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기업의 生殺與奪權(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다. 규제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 신나게 뛰도록 밀어 주어도 시원찮은 판에 이렇게 기업을 옥죄는 규제가 있고, 그 뒤에는 「기업은 잠재적 범죄집단」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기업관이 자리잡고 있다.

정책 당국이 그릇된 기업관을 가지고 기업을 통제하려고 하는 한, 한국 경제의 발전은 어렵다. 재벌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최근의 재벌개혁은 국민경제 주체의 총량적 에너지 결집을 저해하고 있다. 재벌의 부정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국민경제內에서 재벌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역할을 무시함으로써,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큰 축인 대기업 집단의 기업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는 것이다.

재벌(대기업)의 장점인 대규모 연구투자(R&D), 고용 효과, 인력 양성, 해외 마케팅 능력 등을 살리지 못함으로써 국가의 총량적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말레이시아의 저명한 경제실력자인 누딘소피 국가전략문제연구소(ISIS) 소장은 『한국이 개혁과정에서 한국의 기업과 경제구조가 가지고 있는 좋은 장점을 잃어버리고 「삼류 수준의 서구형 경제」로 전락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을 정도다.

우리 憲法은 제119조 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자유경제 질서를 경제에 관한 제1의 원칙으로 존중한다는 의미이다.

예외를 원칙으로, 원칙을 예외로 운영

정부나 시민단체가 기업규제의 근거로 제시하는 헌법 제119조 2항(「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도 法 이론으로 해석하면 자유경제 질서를 보완하기 위한 예외적인 사항일 뿐이다. 1항은 「원칙」을 언급했고, 2항은 「예외」 규정인데 우리의 經濟法에서는 「예외」가 「원칙」을 압도하는 主客 전도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경제법은 자유시장 경제의 최고가치인 競爭을 촉진하기보다는 경쟁을 제한하는 경향이 강하다. 全經聯이 1999년 우리나라 민원사무 처리 기준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 해 전체 업종(표준 산업 분류 기준) 322개 중 40.7%인 131개 업종이 진입 규제를 받고 있다. 진입 규제는 경쟁을 억제하기 때문에 새로운 기업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이 통계는 영업활동의 인가나 기술도입 신고 등 실질적인 진입규제로 작용하고 있는 사항들은 제외한 결과이다. 2년의 시간이 더 흘렀고 제도개혁위원회를 통해 규제 완화 작업이 추진 중이지만 경쟁을 제한하는 위와 같은 상황이 개선되었다는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다.

정부의 진입 규제는 超過利潤(초과이윤)을 인위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에 기업들은 앞다투어 진입 규제의 보호막에 들기 위해 노력하게 만들고 이는 필연적으로 기업의 과잉투자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철강, 자동차 그리고 통신사업에 이르기까지 진입 규제가 작동했던 업종들이 예외 없이 과잉 투자를 경험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의 방지를 목적으로 한다는 公正去來法은 제정 당시부터 競爭 촉진보다는 사회적 형평성을 강조하는 태생적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제1조에 「과도한 경제력 집중을 방지한다」는 목표를 삽입한 결과, 독과점 방지와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등 시장경제의 효율성 提高를 위한 競爭法(경쟁법)의 기본 취지가 크게 훼손되었다.

공정거래법은 외국기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競爭法을 통해 사회적 형평성을 추진하지 않는다. 형평성은 稅法이나 사회복지 관련 법률의 영역이며, 경쟁법은 철저하게 소비자 후생증대와 경쟁을 통한 시장경제의 효율성 증대를 목적으로 한다. 미국도 20세기 초반 경제력 집중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었지만, 공정거래법에서는 獨寡占(독과점) 行爲만을 규제함으로써 혼란을 방지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은 제정 이후 8차에 걸친 개정 과정에서도 국민들의 反기업정서를 감안한다는 정치논리에 의해 대기업 규제에 편중되어 왔을 뿐, 시장 경쟁을 촉진하여 성장 잠재력을 확충한다는 목적은 크게 퇴색했다.

문제는 대기업을 차별하는 競爭法상의 규제가 폐쇄경제 시대에는 중소기업을 보호하는 의미라도 지니고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해외기업의 이윤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기업집단에 대한 규제(공정거래법 제8～13조)는 국내기업과 해외기업, 국내기업 간의 동등한 경쟁 조건마저 제시하지 못하는 逆차별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法 집행 방식에서 違憲(위헌)의 소지마저도 엿보인다.

이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가 「傳家의 寶刀」처럼 사용해 온 내부 거래조사의 법적 근거인 공정거래법 제22조 7호를 보면, 내부 거래조사는 공정한 거래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 정의되고 있다. 경쟁의 제한성을 기준으로 조사대상을 선정하지 않고 혐의만 가지고 대규모 기업집단을 심사대상으로 선정하는 것은 부당한 法 집행이다.

기업들이 정부나 공정거래위와의 분쟁을 우려하여 자제하고는 있으나, 만약 헌법소원이 제기된다면 公法으로서의 공정거래법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래 공정거래위의 조사와 처리에 불복하여 해당 기업들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급증하여 1998년 이후 무려 170건에 달하고 있다.

이는 공정거래위 설립(1981년) 이래 제기된 전체 행정소송 건수의 72%를 차지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 조사 관련 행정소송에서 공정위의 승소율이 크게 하락하여 現정부 들어 공정위의 대법원 판결 승소율은 절반을 겨우 넘는 56.5%, 고등법원 판결 승소율은 63.7%에 불과하고 있다. 경쟁을 촉진하지 못하고 경쟁을 제한하는 왜곡된 경쟁법이 사법부의 판단과도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 관련 법률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重複(중복) 규제다. 정부 부처 간의 업무가 기능, 지역, 대상 등 다양한 기준에 따라 分掌(분장)되어 있기 때문에 소관 법률이 부처 간에 중복되어 나타난다. 특히 중소기업이나 농어업 관련 법률, 대기업 규제에 관한 법률 등 사회?정치적 관심을 끌 수 있는 분야에서는 유사 법률의 중복현상이 더욱 두드러진다.

외환 위기 이후 기업개혁이 話頭(화두)로 등장하면서 경제 법률은 거의 백화점으로 변해 버렸다. 1999년 대통령이 8?15 경축사를 통해 재벌개혁의 강화를 선언하자 모든 경제 부처가 이미 폐지된 법률까지 들추어내며 대대적인 법률 개정 작업에 들어간 것이 대표적인 예다.

대통령의 선언에 화답하기 위해 동원된 몇 가지 법률 개정 사례를 보자. 우선 공정거래위는 10大 기업집단 소속 계열사의 내부거래 公示를 의무화했는데, 부처별로 개혁과제를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공정위가 기업公示 영역까지 개입하는 상황에 대해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내부거래에 대한 公示가 꼭 필요하다면 증권거래법을 개정하는 것이 順理이며, 시장에 주는 정보 기능을 강화한다면 직접적인 개입은 포기하는 것이 법제정의 취지가 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사정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금융감독위원회 역시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능력을 提高한다는 차원에서 「준법 감시인 제도」를 신설하였다.

금융기관의 지배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법률들이 입법된 상태라 「준법 감시인 제도」는 관련 부처의 퇴출구라는 비판까지 받았지만, 그대로 통과되었다. 결국 현재 자산 2조원 이상의 금융기관들은 기존의 내부 감사제도 외에도 社外이사로 감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준법 감시인도 임명해야 한다. 감사와 관련된 법률이 넘쳐나 감사제도 간의 영역조정이 어려울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유사 법률의 重複 현상과 더불어 법률 신설이 개혁의 성과로 간주되면서 동일 부처內에서도 잦은 법 개정으로 법 체계가 왜곡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인기 있는 개혁 메뉴인 기업지배 구조 관련 제도에서 단적으로 나타난다. 대륙적 전통에 입각해 있는 商法에 英?美식의 각종 제도를 급격하게 도입하면서 기존 조항과 신설 조항의 충돌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지나친 지배구조 관련 국제법

감사위원회의 경우, 미국에서는 이사회의 하부 위원회로서 주로 재무회계 감사를 담당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의 이 감사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감사 권한까지 부여함으로써 국적 불명의 감사제도를 만들어 냈다. 증권거래법상의 社外이사 제도도 1년마다 개정되었다. 1998년에는 이사회의 4분의 1을 社外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한 데 이어, 이듬해인 1999년에는 자산 2조원 이상의 대기업과 금융기관 이사회에 2분의 1 이상을 社外이사로 확대하고, 위원장을 포함해 3분의 2의 社外이사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했다.

2000년과 2001년에는 소액주주가 추천하는 社外이사를 주주 총회에서 반드시 후보로 추천해야 하고, 감사위원회 위원인 社外이사를 선임할 때 대주주가 아무리 많은 지분을 보유했다고 해도 의결권을 3%만 인정하는 제한 규정도 추가했다. 심지어는 IBRD(세계은행)의 권고를 명분으로 외국 로펌에 거액의 컨설팅 비용을 치르면서 지배구조와 관련하여 신설할 규제를 찾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 결과 商法, 금융 관련 법, 증권거래법상에 규정된 지배구조 관련 제도는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를 넘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가장 강한 규제로 인정받을 수준이 되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는 또다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경제력 집중 억제와 관련된 규제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업지배 구조는 도대체 어느 부처의 소관 업무이고 어느 법률을 통해 규정해야 하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 법률은 경제주체들의 비용을 줄여 주는 게임의 규칙이 아니라 정부 각 부처의 생색내기용 실적경쟁에 빠져 들어 있는 것이다.

재산권을 경시, 죄악시

우리나라의 소유권 구조는 경제발전 초기에는 다른 발전도상국에 비해 시장 지향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성장과 더불어 오히려 소유권에 대한 경시 풍조가 발생하였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부실기업 정리와 최근의 빅딜 등에서 보듯이 정부가 기업의 소유권에 개입하는 사례도 빈발했다.

퇴출 은행 등의 경우, 주식 소각이나 減資(감자)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개인재산권 침해일 수도 있는 사항에 대해 절차법의 중요성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정부가 기업의 소유권에 마음대로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기업으로 하여금 필요 이상의 政經유착이나 정치에 대한 집념을 보이게 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최근 개정된 증권거래법에서는 감사위원회 구성원이 되는 社外이사 선임시 대주주의 의결권을 3%로 배제하는 등 주주 평등권마저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공정거래위가 出資 총액 제한제도의 해법으로 제시한 것도 25% 이상의 투자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자는 案이다. 시장경제에서 지분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투자가 과연 얼마나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出資에 대한 의결권을 박탈하는 것은 외국기업과의 명백한 逆차별로 신설법인 설립 또는 기업 인수時에 국내기업은 자본금만 부담하고 경영권은 외국기업이 행사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된다. 내국인이 은행의 제1대 주주가 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는 은행에 대한 소유권 제한 역시 역차별에 해당한다. 각종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외국계 금융기관이 사실상 국내 은행을 거의 장악하다시피하고 있다. 소유권을 경시하거나 죄악시하는 풍조下에서 자유경제 질서가 꽃피울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경제 관련法이 경쟁촉진이 아닌 경쟁 제한에, 효율성이 아닌 형평성에 치중될 경우 시장경제에서는 보이지 않는 각종 비용이 발생한다. 그 중에서도 기업가 정신의 위축은 이제 우려할 만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업가 정신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도, 수입할 수도 없다. 수많은 기업가를 범법자로 만들고 우량기업마저도 범법자 취급하는 現상황은 뒤집어보면 경제 법률의 책임일 수도 있다.

기업의 가장 민감한 사안인 소유 지배구조와 관련해 각종 법률이 남발하면서 기업의 경영력이 분산되는 상황도 초래되고 있다. 기업이 소유 지배구조에 신경을 쓰는 것은 정부 부처에 장관이 교체될 때 업무 공백이 발생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된다.

경쟁 제한에서 경쟁 촉진으로

우리나라 경제법은 입법 목적에 크게 벗어나고 있어 개정이 시급하다. 규제 만능주의에 사로잡혀 지나치게 기업의 활동을 제약하거나 자유 시장경제의 근본을 흔드는 규제나 법령은 개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法을 적용하는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獨占규제 및 公正去來에 관한」 지금의 法律을 「獨占규제 및 경쟁 촉진에 관한 法律」로 명칭을 개정하고, 경제적 효율성과 미래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방향으로 법률의 전면적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 「公正(공정?fairness)」이라는 非경제적이고 모호한 개념에서 탈피하여 「경쟁 촉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좀더 타당하다.

우선 총칙(제 1～2조)에서 과도한 경제력 집중의 방지 목적을 削除(삭제)하고 獨寡占 및 경쟁제한적 행위의 규제를 통한 경쟁 촉진으로 단순화해야 한다.

경제력 집중 억제는 과거 폐쇄경제 시대의 유산으로 세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現시점에서는 전면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정거래법 제3장에서 규정하고 있는 30大 기업집단 지정제도와 이에 근거한 규제의 전면 폐지도 검토하여야 한다. 현재의 기업집단 제도는 우량기업일수록 좀더 많은 규제에 직면하는 모순적 상황을 야기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전략적 선택을 제한하고 있다.

지주회사 설립을 규정하고 있는 제8조의 경우 실질적인 지주회사 설립을 가로막고 있는 非현실적인 제한으로 전면적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의 제한적 요건下에서는 우량기업도 지주회사 설립이나 전환에서 제약을 받고 있다. 또한 子회사 지분 50% 이상 보유 규정으로 지주회사 설립時 막대한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불공정 거래행위의 금지에서도 「불공정」의 개념이 모호하고 주로 경제력 집중 억제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으므로, 「경쟁 제한 행위 금지」로 명칭을 고치고 경쟁 제한의 개념을 명시할 필요가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 조항(법 제3조 2항, 제4～6조)은 불공정거래 금지조항(법 제23조～제24조 2항)과 상당수 중복되므로 내용을 축소하면서 兩者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 기업가 정신이 살아나고, 기업이 살아나며 국가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석종현(단국대 교수, 시민사회 공동대표)

출처 - 월간조선 2002년 2월호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