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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별 격차 인정해야
2002-07-08
고교별 격차 인정해야 지난 몇 년간 전국 고교의 수능성적 대비 내신성적 자료를 분석해 보면 동일 내신에서 고교별 학력수준의 차이가 뚜렷하며, 연도별로 고교별 학력수준의 격차가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정부에서 추진해온 평준화 정책이 고교 평준화를 이룩하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간 교육부는 고교 평준화정책이 지역·학교간 고교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촉진하고 균등한 대학교육 기회를 보장하여 초·중등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래서 평준화를 해제하면 빈부차이에 의한 교육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과외가 극성을 부릴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 같은 교육부의 장담이 헛된 것이었음은 현실로 완연하게 입증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입시 학원가 부근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 학부모들이 더 나은 고교로 배정받기 위해 며칠간 밤샘 줄서기 소동을 벌이는 광경은 평준화정책에도 불구하고 지역별 학교 격차가 전혀 해소되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또한 평준화 이후 사교육비가 줄기는커녕 오히려 국가의 공교육 예산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한 것은 평준화정책이 과외열기를 식히는 데 아무런 기여를 못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추기는 지경에 이르렀음을 웅변한다. 평준화 3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얻은 것은 대학졸업으로 사회적 신분을 재는 국민의 인식이 변화되지 않는 한 입시경쟁을 근본적으로 잠재우기란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이다. 이상적인 목표를 내걸고 출발했던 평준화정책은 목표 달성은커녕 오히려 부작용만 잔뜩 양산했다. 가장 중요한 부작용 중 하나는 평준화정책이 고교별 평가를 불필요하게 만듦으로써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동기와 자극을 없앤 것이다. 이것은 은연 중에 고교들로 하여금 교육포기와 방임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 공교육의 붕괴로 이어졌다. 부실한 공교육과 교실붕괴는 학생과 학부모를 학원과 조기유학으로 내몰았으며, 국가를 믿고 공교육에 자식을 맡긴 서민층 가정의 자녀들은 빈곤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이는 교육기회 균등을 통한 평등사회 구현이라는 우리 국가목표에 명백히 역행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이 학원 교육보다 나아지려면 학교별로도 평가를 통한 경쟁이 있어야 하며, 그 평가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 결과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교별 수능성적과 수능 영역별 등급분포, 시·도 교육청 연합 전국학력 평가결과를 모두 공개해야 한다. 수능성적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 될 수는 없지만 고교 교육의 내실정도를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임에는 틀림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그치면 안된다. 이 같은 학력(學力)요소 외에 고교별 교육 특성을 알 수 있는 여러 객관적이고 창의적인 평가지표들이 함께 공개되지 않으면 안된다. 감성능력 지표, 수행평가 지표, 자퇴율, 대학 진학률, 학생 대 교사 비율, 장학금 수혜율 등이 그것이다. 교육부는 이 같은 다양한 기준을 개발해 고교별로 평가하고 공개함은 물론 그 결과를 대학에 제공해 종합적인 학생선발 자료로 삼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처럼 경쟁을 도입하면 단위 교육구별로 수준차가 가시화될 것이다. 그러면 교육구별 수준에 의한 교육기회 불균형 현상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대학들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양한 특별 전형을 고안해야 한다. 지역적 편중과 극심한 학력경쟁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정원의 일부는 몇 개의 지방 시·도별 교육구들을 묶어 최소 선발인원을 정하는 지역할당제도 고려할 만하다. 그 경우 시·도별로 할당될 정원은 교육구별 평가실적에 따라 대학 자율로 연차별로 조정하여 차등적 보상 원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평준화정책의 공과는 이제 분명해졌다. 평준화라는 보호막으로 아이들에 대한 학교의 방임과 무관심을 감싸는 것은 나라의 미래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쟁을 활용하여 내실있는 교육을 독려함으로써 우리는 선진국으로의 진입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다. 金勝權 (고려대 교수·서울지역 대학입학처장 협의회장) 출처 - 조선일보 2002. 7. 8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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