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과열 걱정할 때다

한국은행은 올 1분기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5.7%의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당초 금년도 1분기 4.7%, 2분기 5.7%로 예측했던 성장률을 적어도 1분기 이상 앞당겨 달성했음을 나타낸다. 우리 경제가 작년 3분기에 바닥점을 지나 성장고지를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현재 국내외 경제 여건에 비춰볼 때 진행되고 있는 성장 추세는 당분간 꺾일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금년 중 평균 성장률이 6%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이 같은 실질 성장률은 우리나라 잠재 성장률 4.5~5.0% 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고속성장이다. 이는 기쁨일 수도 있고 걱정일 수도 있다.

경제 성장이 기술개발, 설비투자 증대, 수출확대 등을 바탕으로 견실하게 추진되면 고용과 실질소득 증대를 통해 국민 생활수준을 높여준다. 성장의 결과를 정직하고 공의로운 사회환경 아래 국민 모두가 경제활동에 기여한 몫에 따라 공평히 누릴 때 인류가 지향하는 최적 사회가 이룩되는 것이다. 한 나라의 거시경제 정책은 이런 목표달성을 추구하고 있다.

한편 실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초과하면 이는 경기과열 징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가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진작 정책으로 고도 성장을 하게 되면, 조만간 물가 불안 요인이 싹트게 된다. 이럴 경우 정책 당국은 정책 기조를 안정 방향으로 조율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경기 침체에 대비해 운용해 오던 각종 경기 부양책, 그 중에서도 내수 진작 목적으로 도입한 특소세 인하 조치 등의 정책 기조를 계속 연장하겠다고 밝혀 이미 하반기 물가 상승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금년도 1분기 중 소비자 물가는 평균 2.5% 수준에서 안정됐다. 예년과 달리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이 하반기로 미뤄졌고, 물가지수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동전화 요금 등을 1분기 중에 인하시켜 의도적인 물가 안정을 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반기에는 미뤄 놓았던 공공요금 인상이 불가피하고, 4월 이후부터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국제 유가불안도 물가인상 요인이 되고 있다.

높은 성장률 발표는 이미 경제가 과속을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다. 연간 경제 성장률이 금년도에 6% 이상 될 것으로 보여, 이는 잠재성장률을 크게 앞지르는 수치이다. 당장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되고 있지 않더라도 이미 장기채권 수익률이 4월 이후 6%에서 7~8% 수준으로 뛰고 있어서, 투자가들은 이미 인플레이션을 감지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증권시장의 동태도 심상치 않다. 증시가 연주하는 음악소리는 다소 불협화음이 섞여 있긴 하지만, 계속 옥타브가 높아지고 있다. 시장에 상장된 주식가치의 급속한 증가와 잠재적 불안정이 경제에 갖는 중요성은 과거보다 훨씬 커지고 있다. 높은 경제 성장과 동행해 증시가 과열되면 투자자들의 허풍 소비와 더불어 물가불안이 가속될 수 있다. 이럴 때 중앙은행이 뒤늦게 콜금리를 쥐꼬리만큼 인상해 봐야 기껏 며칠 동안 거품을 조금 누그러뜨릴 뿐, 거품의 공기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한다. 이런 경우 금리인상의 최종 결과는 증시 안정이 아니라 상승으로 이어진다. 금리인상 직후에는 주춤하되 곧 다시 이륙하는 사이클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그동안 기업과 금융구조 조정추진의 결과로 은행들이 다소 위험에서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경기 부양을 위한 저금리 정책 추진과 은행의 가계 신용이 확대되면서 경제 전반에 유동성이 넘치는 액화된 경제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월드컵과 각종 선거를 앞에 놓고 있는 행정당국과 정치권은 지금과 같은 성장 우선의 정책이 몹시 달갑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실질 가용자원과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과욕 성장 정책은 물가안정 정책으로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고도 성장에 당장 샴페인을 터뜨리고 보자는 생각보다는 얼마 후 고통과 눈물로 되돌아 올 경제적 어려움을 미리 바라보는 지혜와 대책이 필요하다.

黃義珏 (고려대 국제대학원 원장)
출처 - 조선일보 2002. 5. 28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