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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發 '환율쇼크'
2005-02-28
한국發 '환율쇼크' 지난주 한때 원달러 환율은 998.1원까지 떨어져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세자릿수를 기록했다. 이번 환율쇼크는 공교롭게도 외환보유고의 통화 다변화 계획에 관한 한국은행의 어설픈 보고서가 발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일부에서는 한은의 말 한마디가 세계 외환시장을 떨게 했다고 우쭐하기도 한다. 그러나 미달러 환율은 그렇지 않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계속 늘어서 지난해에 670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7%에 달했다. 바늘 하나가 낙타의 허리를 부러뜨린다는 말이 있다. 전혀 우쭐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미 달러화의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달러의 신인도가 떨어져서 세계적으로 달러화 투매사태가 벌어지면 환율 폭락에 따른 국제통화제도의 붕괴 및 금융위기 같은 쓰나미 현상이 생길 우려도 있다. 돌이켜보면 한은은 그동안 금리 및 환율에 관해서 필요 이상으로 불필요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정책당국은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좀 더 신중하고 세련되어야 한다. 이번에 소위 한국발 환율쇼크도 ‘제 손으로 제 눈 찌르기’ 식이다.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바람에 한은은 외환시장에 개입하느라고 또다시 적지 않은 달러를 사들였을 것 같다. 폭락했던 환율이 며칠 만에 대부분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초 이래 18%가량 떨어졌다. 일본, 유럽연합, 대만, 싱가포르 통화들보다 몇 곱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것이다. 그만큼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채산성도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행히 올해 들어서도 수출이 예상보다 호조를 띠고 있다. 정책당국은 언필칭 환율은 기본적으로 외환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다만 급격한 환율변동은 외환시장의 교란요인이 되므로 변동속도의 조절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당국은 대체로 고환율정책에 집착해 왔기 때문에 속도조절에도 실패했다. 지난 2∼3년간에 점진적으로 조정되었어야 할 환율을 지연시키고 고환율을 고집하다가 작년 후반 이후 급락세가 집중된 것 같다. 그동안 한은의 대규모 외환시장 개입에도 불구하고 환율을 인위적으로 높은 수준에 지속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도 입증된 셈이다. 고환율 정책을 고수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정책당국이 외환시장 개입을 위해서 발행한 통안증권과 외평채의 이자부담만 해도 엄청나다. 게다가 대규모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는 데 따르는 기회비용도 적지 않다. 고환율을 유지하면 수출은 유리하지만 수입가격이 높아져서 수입재화를 사용하는 소비, 투자 등 내수를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지난 2년 동안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부진한 양극화 현상도 고환율 정책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작년 11월 이후 환율이 크게 떨어지면서 내수 침체가 완화된 것도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고환율 정책이 반도체, 전자, 철강, 자동차 등 주력품목을 수출하는 대기업들의 호황을 지원해준 반면 내수 중심의 중소기업에는 침체를 심화시켰다고 본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우리 경제의 양극화 현상을 심화시켰다면 이것은 커다란 아이러니이다. 미국의 재정수지와 경상수지의 쌍둥이 적자가 개선되지 않는 한 앞으로 세계적인 달러 약세는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제 세자리 환율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따라서 환율정책도 수출증대를 위한 단기적인 환율 방어와 가격경쟁력 유지만으로는 안 된다. 우리 경제도 이제 수출에 못지않게 내수를 촉진하지 않으면 경기침체도 양극화 현상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환율하락이 불가피한 만큼 기업은 글로벌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술혁신과 생산성 향상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외경제 여건이 어려울수록 정부도 규제 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등 친시장, 친기업적인 정책운용이 절실하다. 환율 방어를 위해서 시장개입이나 금리인하만 능사로 여길 경우 인플레이션 압력이 고조되고 부동산 및 자산가치의 거품이 생기는 등 부작용도 크다. 우리 경제가 경쟁력을 강화하고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원화 강세는 불가피하며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이재웅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출처 - 세계일보 2005. 2. 28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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