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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권소송법' 확대 무모하다
	2004-12-27
'증권소송법' 확대 무모하다 엊그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 의원 15명이 집단소송을 모든 분야로 확대해서 시행하기 위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새해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증권집단소송의 부작용을 덜기 위해 과거의 분식회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두고 꽤나 심각한 논의가 있었던 것이 바로 얼마 전이다. 우리나라가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미국의 경제인들은 “한국이 큰 일을 저질러서 놀랐다”고 할 정도로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한 것은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증권집단소송을 도입한 것만 해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를 확대해서 소비자 식품안전 등 모든 분야에 적용하자고 하니 기업을 상대로 한 성전(聖戰), 즉 ‘지하드’를 하자는 것인가. 미국에 특유한 집단소송은 실제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피해자에게도 판결의 효력을 인정해서 피해구제를 원활하게 하자고 고안된 것이다. 그러나 집단소송은 병폐와 부작용이 너무 심해서 이제는 이를 폐지하자거나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책임있는 학자들은 집단소송을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더불어 미국 민사소송의 양대(兩大) 병폐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집단소송을 지지하는 세력은 집단소송으로 큰돈을 번 변호사들과 극단적인 주장을 펴는 시민단체 정도다. 집단소송에선 변호사가 사실상 당사자가 돼 소송을 주도하게 마련이라 소송 남용이 극심한 것은 미국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미국에선 1995년에 증권집단소송을 제한하는 법률을 의회가 통과시키자 이를 호재로 파악하고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주식투자가들은 증권집단소송이 자신들을 보호하는 제도가 아니라 위협하는 제도로 보는 것이다. 집단소송 전문 변호사들은 사소한 문제를 빌미로 소송을 제기해서 막대한 배상을 얻어냈다. 컴퓨터 회사, 제약회사, 보험회사, 수도사업소, 비디오 렌탈 체인 등 온갖 기업들이 악덕 변호사들의 먹이가 돼서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정작 피해를 당했다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소송을 통해 얻은 혜택은 미미한 것이었다. 이것이 집단소송의 실상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을 도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사람은 일단의 변호사와 반(反)기업정서가 강한 시민단체였다. 특히, 시민단체에서 무슨 직책을 맡고 있는 변호사들이 그런 주장을 많이 했다. 이들이 집단소송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례는 사실을 왜곡한 면이 많다. 이들이 흔히 들고 있는 실리콘 유방확대 수술 사건만 해도 그렇다. 다우코닝이 개발한 실리콘 삽입제는 유방확대 수술을 한 여성에게 암을 일으키거나 다른 특별한 위험을 야기하는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 회사는 집단소송 때문에 파산하고 말았다. 실리콘 사건은 집단소송의 폐단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일본 등 많은 나라가 집단소송을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도 이 같은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을 도입하지 않은 나라에서도 선정 당사자 제도 같은 소송기법을 이용하면 피해자 구제에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돌이켜보면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보수정당이라는 한나라당이 국회 다수당일 때 증권집단소송제 도입에 찬성한 것은 수도이전특별법에 찬성한 것 못지않게 한심한 일이었다. 많은 사람이 시민단체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을 진실만을 전달하는 정의의 사도(司徒)처럼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시민단체가 특정한 노선을 갖고 활동을 하면 그것은 이미 일종의 정치세력인 것이며, 거기에 참여하는 변호사들 가운데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계기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의 의원들이 집단소송을 확대하자고 주장하는지도 궁금하다. 이들이 현실을 도외시한 막연한 ‘이상향(理想鄕)’ 때문에 집단소송을 확대하자고 주장한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혹시 기업을 ‘악(惡)’으로 보아 기업을 옥죄는 제도를 도입하려 한다면 큰 문제다. 이상돈 (중앙대 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27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