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利인상 서둘지 말라

요즘 경기과열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일부 언론은 재정의 경기중립적 운용과 동시에 빨리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의 경기중립적 운용에 대해서는 별 논란이 없겠으나 금리인상과 관련해서는 다음 몇 가지 요인에 대한 철저한 점검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최근 내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고 하나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요인이 많다. 먼저 소비와 관련해 소비증가세가 내구재 소비에 집중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자동차 판매 증가와 고가 가전제품의 판매호황은 작년 12월부터 시행된 특소세 인하조치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자동차의 경우 특소세 인하조치가 6월말에 끝나면 그 이후 소비증가세가 크게 둔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건설투자와 관련해서도 일회성 요인이 없지 않다. 올해 3월부터 다가구 주택의 주차공간 확보의무가 강화되고, 금년 중에 기타 건축물의 용적률 제한조치가 실시될 예정으로 있어 이를 회피하기 위해 작년말 이후 주거용 건물 건설이 급증하고 있다. 이들 건축붐도 새로운 규제가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증가세가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외환위기 이후 중요도가 크게 높아진 수출은 1년 이상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감소폭이 크게 줄었다는 3월 수출액을 보면 아직도 작년 초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4월에는 수출이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작년 같은 달의 낮은 수준과 비교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일 가능성이 크다. 우려되는 것은 최근 월별 수출실적 동향이 아니다.

현재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하반기 본격 경기회복 전망의 공통적인 가정은 미국의 경기회복에 따라 하반기 중 수출이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의 경기회복 속도와 성격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 동안 미국경기를 지탱해준 소비는 추가로 증가할 가능성이 낮은 반면 새로운 경기활황의 원동력이 될 투자는 아직도 늘지 않고 있다.

또한 전반적인 물가는 양호한 추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불안요인도 무시하지 못한다. 최근 생산자 물가가 유가 및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을 반영해 3개월째 오르고 있는데 최근의 유가불안이 지속될 경우 국내물가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유가상승과 같이 공급측면의 충격에 의한 물가상승 압력의 경우 금리인상은 물가안정 효과는 없으면서 실물경기 부진만을 부추기게 된다.

일부 부동산 가격의 급등은 아직 지역적으로 편중돼 있고 그동안 시행된 공시지가 인상 등의 미시적인 대응도 적절해 보여 앞으로 지속될지는 불투명하다. 물론 가계대출 증가, 부분적 부동산 가격 급등 등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금리인상은 국지적 과열현상을 치유하기 앞서 이제 막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투자·수출 등 실물부문을 과도하게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가계대출 급증과 부동산 가격 급등의 문제는 거시정책 대응보다는 미시정책, 특히 건전 금융감독정책과 조세정책을 통해 접근하는 것이 순리이다. 금리정책이 이런 국지적인 문제해결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금리인상에 대한 주장은 총통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경우에 가장 설득력을 갖는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아 지속적인 총통화 증가는 시차를 두고 거의 예외없이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다소 높아진 총통화 증가 추세는 이를 지속적 통화증가로 해석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설령 지속적인 통화증가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다 하더라도 금리인상의 시기와 폭에 대해서는 큰 정보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현재로서는 4~5월경에 밝혀질 1분기 경기관련 지수들을 종합평가한 후 지속가능한 경기회복세가 자리를 잡았다고 판단될 경우 금리인상을 하더라도 늦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 좌승희 / 한국경제연구원장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17 시론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의 공식적인 견해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