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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의 공적 책임 망각해선 안 된다
	2004-07-05
방송의 공적 책임 망각해선 안 된다 방송위원회 제1보도·교양 심의위원을 사임하며 방송위원회는 지난주 탄핵 관련 방송에 대한 포괄적 심의를 각하했다. 그러나 필자는 방송과 정치, 그리고 여론 형성의 역학관계에 대해 방송인과 학자는 물론 일반 국민도 한번 깊이 생각해야 할 좋은 사례가 탄핵방송이라고 보고 방송위 심의위원과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밝히면서 심의위원직을 사임한다. 우선 탄핵방송의 공정성을 논하기에 앞서 방송의 근본적 성격과 그 공적 책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희소한 전파를 이용하는 방송은 그 제한적 성격과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국가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따라서 방송법은 방송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공정하고 균형있게 반영해 국민의 화합과 민주적 여론 형성에 이바지해야 하며, 특히 정치적 이해당사자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때 균형을 유지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방송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모든 방송은 규제를 받으나 그중에서도 특히 공영방송은 수신료와 같이 국민이 부담하는 다양한 지원방식에 의해 운영되기 때문에 국가 및 정치권력과 자본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해 오로지 전파의 주인인 국민의 이익에 봉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영방송은 국민 간에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촉진하고 숙의를 통해 공론이 형성되도록 그 자체가 공론의 장이 돼야 하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을 방송할 때 한쪽에 편향되지 않아야 한다. 공영방송이 한쪽의 편을 드는 순간 공영방송은 당파적이 되며 그 존립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물론 민영방송도 예외는 아니나 공영방송은 그 제도를 태동시킨 정신에 비춰볼 때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이 더욱 투철해야 한다. 공영방송의 전범인 BBC를 탄생시킨 영국의 방송법규가 논란이 되고 있는 사회 현안에 대해 공.민영 불문하고 모든 방송사가 방송에서 자사의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이러한 이유에서 필자는 탄핵소추를 헌법이 허용하는 합법적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사안으로 보고, 그러한 관점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판단한 언론학회 보고서의 해석이 타당하다고 판단한다. 그 이유는 첫째 탄핵에 찬성한 국민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란 수치는 결코 무의미한 소수가 아니며, 과거 독재 대 민주 투쟁 때와 같이 국민 모두가 한쪽에서 분노한 '일탈적' 사건과는 다르고, 따라서 탄핵 반대가 모든 국민이 합의한 사항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헌법재판소가 탄핵소추의 절차적 적법성에 하자가 없다고 판결했을 뿐 아니라 판결문에서 소추 이유를 부분적으로 인정하고 있고, 판결문의 내용과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렸다는 사실은 탄핵이 논쟁적 사안이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국민의 7할이 야당의 당리당략적 의도를 간파하고 이에 분노를 표시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나 그 계산된 의도만이 잘못된 게 아니었음은 헌재의 결정문이 증명해준다. 셋째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탄핵소추가 '정치적 일탈행위로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사실이며, 따라서 탄핵방송은 공정했다'는 일부 방송사의 주장은 헌재 판결문에 내포된 복합적 의미를 단순화한 과도한 해석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방송의 중요한 공론 형성 기능을 간과한 것이다. 즉, 여론이 한 시점에 나타난 대중의 집합적 의견이라면 공론은 시민이 공론장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명하고 숙의해 도출해내는 합리적인 '공중의 판단(public judgment)'이다. 물론 여론이 진정한 민의와 진실을 담고 있을 수 있지만 일시성과 가변성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은 여론을 반영할 뿐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이 공론장에서 자유로운 논의를 통해 사안의 의미를 숙고하고 결론에 이르도록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정치에서 언론이 수행해야 할 역할이다. 방송의 임무는 단순히 여론의 반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일부 방송 프로그램이 초기 여론의 비중에 의거, 탄핵 반대 입장을 두둔한 것은 여론 반영의 임무는 수행했을지 몰라도, 보고서 지적대로 국민적 숙의를 조기 종결시키고 소수자의 의견 표현의사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주의는 방송사처럼 막강한 국민 설득 자원을 가진 기구가 자신의 주장을 국민에게 설파하는 행위가 허용되는 권위주의적 체제가 아니다. 방송사의 주장이 균형을 잃고 편향될 때 그것은 방송이 아니라 선전이 된다. 제작자의 주관적 의견은 논평 등보다 적절한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했어야 옳다. 물론 방송 제작자는 사회 현안에 대해 전문적 식견에 의거, 방송할 자유가 있다. 따라서 만일 모든 국민이 특정 현안에 대해 민주주의의 존폐가 달린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 방송사는 평상의 공정성 기준을 초월해 대의의 편에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송 편성의 자유는 국민 전체 이익과 방송인의 투철한 전문직 의식을 전제로 한 것이지 스스로 제정한 방송강령마저 위배하는 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의 행사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에 직면해 지상파 방송의 방송 내용에 대해 불만이 제기됐다면, 그 요구가 개별적이든 포괄적이든 그에 대한 정밀 분석과 평가는 마땅히 이뤄져야 하며, 어떤 형태로든 종합적인 결론도 내려져야 한다. 국민은 나무보다 숲의 형세를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법 적용이 국민의 알 권리를 압도할 수는 없다. 언론학회 보고서에 대한 평가는 계속되겠지만 필자가 심의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됐다. 또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치부되던 탄핵방송에 문제가 있었음을 널리 알리고, 정치와 방송 그리고 여론 형성의 역학관계를 반추할 기회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생산적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기여도는 매우 크다고 본다. 방송의 공정성에 대한 논의는 종결된 게 아니라 앞으로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끝으로 탄핵방송이 방송위원회의 심의대상이 되고 유례없이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된 데 대해 분노하는 제작자들은 그 정당성을 주장하는 만큼 탄핵방송에 잘못된 점이 과연 없었는지, 변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우리 사회에서 방송이 과연 수행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지 한걸음 뒤로 물러나 겸허한 마음으로 성찰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이것이 이번에 많은 국민이 TV 방송 3사에 보내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문제가 된 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인들이 이 같은 메시지에 긍정적으로 호응할 때 한국의 방송 저널리즘과 민주주의는 진일보할 것이다. 이창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7. 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