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02년 4월 11일 '자유기업포럼'(주최:자유기업원)에서 발표된 「현 고교평준화제도의 위헌성」이라는 주제의 내용입니다.

현 고교평준화제도의 違憲性

이 석 연(李 石 淵, 변호사, 前 경실련 사무총장)

(1) 현행 초 중등교육법 제47조제2항은 고등학교의 입학방법 및 절차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이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7조제1항은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은 당해 학교의 장이 실시함을 원칙으로 하되, 같은 조 제2항에서 「제1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교육인적자원부령이 정하는 지역안에 소재하는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은 당해 교육감이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 근거하여 「교육감이고등학교의입학전형을실시하는지역에관한규칙」이 교육부령으로 제정되었으며 동 규칙 제2조에는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77조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교육감이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서울특별시 2. 부산광역시 3. 대구광역시 4. 인천광역시 5. 광주광역시 6. 대전광역시 7. 울산광역시 8. 경기도 수원시, 성남시, 안양시, 부천시, 고양시, 군포시, 과천시 및 의왕시 9. 충청북도 청주시 10. 전라북도 전주시, 익산시 및 군산시 11.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시 및 진주시 12. 제주도 제주시”라고 규정하여 전국의 대도시 및 주요도시의 경우 당해 교육감이 학생을 해당지역안의 고등학교에 배정하는 방식으로 고교입학전형에 갈음하고 있다.

따라서 이른바 고교평준화제도의 직접적인 법적 근거는 교육법시행령 제77조제2항 및 교육인적자원부령인「교육감이고등학교의전형을실시하는지역에관한규칙」이다.

(2) 헌법 제31조제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모든 국민의 교육을 받을 권리 즉 교육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교육기본권은 생활관계의 다양성과 지적능력의 차이를 전제로 하여 배우고 가르치고 교육시킬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서, 능력과 개성에 따른 차이를 무시하고 교육에 있어서의 획일적인 균등주의 내지 평등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통설). 이와 같은 능력에 따른 취급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하라는 헌법 전문(前文)의 정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헌법 제11조제1항에서 보장하는 평등의 개념은 절대적?산술적 의미의 평등이 아닌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함으로써 달성되는 배분적 정의에 입각한 상대적 의미의 평등이라는 것이 통설, 판례의 입장이다. 헌법의 구체화법인 교육기본법은 학습자의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학습자의 인격을 존중하고, 개성을 중시하여 교육내용, 교육방법 등을 강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12조제2항). 즉 헌법은 능력과 개성, 적성에 따른 학생, 학부모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교육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 개개인의 지적능력과 개성, 적성의 차이 그리고 생활관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교육감이 근거리 통학이라는 명목하에 고등학교를 강제 배정하고 있는 현 고교평준화제도는 학생, 학부모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을 박탈함으로써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고 있다고 본다.

(3) 모든 국민이 배우고, 가르치고, 교육시킬 권리는 교육기본권이기에 앞서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의 한 내용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 역시 국민의 배울 권리는 행복추구권에서 나오며 특히 학부모의 자녀에 대한 교육권의 일환으로 자녀를 종립(宗立)학교에 보낼 것인가, 공립학교에 보낼 것인가, 특수목적고등학교에 보낼 것인가, 자립형사립학교에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학교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바 있다(헌재 2000. 4. 27 선고 98헌가16 등, 이른바 과외금지규정 위헌결정). 따라서 생활관계의 다양성 그리고 능력과 적성 및 개성을 중시하여 교육정책을 입안, 시행하라는 헌법의 정신을 무시하고 획일적 평등주의, 하향식 일원화로 나가고 있는 고교평준화제도는 청구인들의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과 행복추구권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민의 생활수준을 「평준화」하고 생활관계의 변화에 따른 위험부담을 「일원화」하려는 현금 우리사회에 일고있는 「평준화」,「일원화」의 과열현상은 국민 각자의 자유로운 생활설계를 통하여 생활형태의 다양성을 실현하려는 헌법의 기본권 보장정신 내지 기본이념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획일적 평등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생활수준의 하향식조정을 가져오고 있는 현 교육평준화정책은 생활형태의 다양성의 바탕위에서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함으로써 생활수준의 상향식 조정을 목표로 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과 일치하지 않는 다 하겠다.

[모든 국민의 생활수준을 「평준화」하고 생활관계의 변화에 따른 위험부담을 「일원화」시키려는 잘못된 평등권 개념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포기한 지 오래된 것임에도 우리 사회에서 평준화?일원화 과열현상이 일고 있음은 자유와 평등의 개념과 그 관계를 잘못 이해한 데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평등은 언제나 자유를 전제로 할 때에만 그 의미가 있다. 즉 「자유 속의 평등」이어야지 「자유 대신에 평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은 생활의 평준화나 일원화가 아닌 생활형태의 다양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자기 책임하에 일상생활에서 오는 생활의 위험(질병, 실업, 사고, 페질, 노령 등)을 감당할 수 있는 고소득층 내지 재력이 있는 계층을 저소득층 내지 영세민과 구별함이 없이 일률적인 국민보험의 규제대상으로 함으로써 획일적 평등주의로 나가고 있는 사회보장제도는 헌법이 강조하는 사회국가 실현의 이념적 한계를 벗어난 것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현재 시행중인 모든 국민을 하나의 「연대집단」으로 묶는 의료보험, 연금보험,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험은 오히려 생활수준의 하향식 조정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생활수준의 상향식 조정을 목표로 하는 현대산업국가의 헌법질서 즉 현행 헌법정신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라 하겠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에 논란이 된 통합의료보험 제도 역시 헌법의 정신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본다. 각종 사회보험제도가 자유의 조건 내지 자유의 증대를 위한 것이 되어야지 오히려 자유를 감소시키고 자유의 대가로서의 의미를 가져서는 아니될 것이다.]

(4) 적성과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 평등주의로 치닫고 있는 고교평준화제도는 국가로 하여금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도록 여건을 조성하도록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전문(前文)의 규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지나치게 하향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국가경쟁령을 약화시켜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겠다.

더 나아가 현행 고교평준화 정책으로 인한 학력저하 현상은 결과적으로 공교육을 황폐화시켰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교육비의 과도한 지출은 조기유학, 교육이민의 열풍을 불러왔음은 물론 유명사설학원이 집중된 지역의 부동산 값 상승과 그 연쇄효과로 인한 여러 사회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하였다. 또한 공교육의 황폐는 엄청난 사교육비를 부담할 능력이 있는 계층의 자녀들은 사교육의 혜택을 받게 되고 그렇지 못한 계층의 자녀들은 부실한 학교교육에 의존함으로써 평준화제도가 결과적으로 계층간 불평등까지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5) 헌법은 제31조제1항에서 모든 국민에게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보장함과 동시에 제4항에서는 다른 나라의 헌법에 그 유례가 없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다. 교육기본법에서는 교육이 어떠한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의 전파를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됨을 선언하고 있다(제6조제1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 학교운영의 자율성 등이 정권적, 관료주의적 차원에서 훼손되고 있는 나라는 없다(그런점에서 교육부의 「대학입학전형기본계획」이라는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치뤄지고 있는 현재의 관치대입제도를 비롯하여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나친 간섭 및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각종 교육관계 법령 역시 교육의 자주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한 헌법정신에 위배된다 할 것임).

현 정권의 여러 실정(失政)중에서 국민들이 가장 뼈저리게 피부로 느끼는 분야는 바로 업적위주의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이 빚어낸 교육파탄이었음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는 역대 정권의 교육정책 역시 마찬가지이다. 교육현장에서의 학생 각자의 적성과 능력, 그리고 학교의 특성에 따른 교육적 차원의 경쟁원리를 도입함으로써 학생, 학부모, 학교로 하여금 진정한 의미의 학교선택권, 학생선발권을 부여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