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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지주회사法의 한계
	2004-05-11
금융지주회사法의 한계 삼성애버랜드가 갑자기 금융지주회사화 논란에 빠졌다. 작년 말 현재 애버랜드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19.3%)에 대한 평가이익이 증가하여,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4.7%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 비중이 50%를 넘으면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금융지주회사로 신고해야 한다. 이렇게 되자, 삼성애버랜드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일단 금융지주회사로의 전환 신고 의무를 마쳤다. 이에 따라 6월말까지 이 비율을 50%이하로 떨어뜨려 지주회사 요건을 해소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는 한, 금융지주회사법에 의해 금융회사 이외의 모든 주식과 사업을 매각해야 할 처지다. 용인자연농원도 팔아야 하고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도 처분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애버랜드는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의도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애버랜드는 자산을 늘리거나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하여 지주회사 요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나 출자총액 제한제도 때문에 삼성계열사는 삼성생명 주식을 인수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제3자에게 매각해야 하는데, 이 경우 삼성생명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 지분이 7% 가까이 되므로 삼성전자까지도 함께 적대적 M&A에 노출된다. 그렇다고 하여 자산을 늘리는 방안도 쉽지 않다. 아무런 사업 계획도 없이 갑자기 부채나 자본금을 확대하여 신규 자산을 취득해야 하기 때문에 자본 조달 비용만 높아지게 된다. 또한, 앞으로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평가이익이 늘어나면 계속해서 자산을 취득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행 지주회사법은 ‘사람들을 쇠침대에 눕히고 키가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빼어 키를 늘이고, 길면 다리를 잘라서 침대에 맞추는’ 그리스신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를 연상케 한다. 에버랜드는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 수에도 변동이 없고 금융지주회사로 갈 계획도 없는데 규제에 맞춰 자산을 늘리거나 줄여야 할 상황이니 말이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것은 삼성전자 주식 가격이 급격히 치솟아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평가이익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경영을 너무 잘해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 기업으로 키웠기 때문에,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규제의 법망에 걸려든 셈이다. 경영 실패로 부실 기업을 양산하면 있는 규제도 풀어 주고, 반대로 성공하면 규제에 걸려 범법자가 되는 것이 웃지 못할 우리의 경제 현실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삼성생명의 투자 유가증권 평가이익에 대한 계약자와 주주 간의 배분 방식도 삼성전자 주식 가격이 급등한 데 기인한다. 삼성전자 주식 가격이 오르지 않았으면 계약자와 주주가 나누어 가질 평가이익 자체가 크지 않아 논란이 될 필요가 없다. 현재 산업 재벌에 의한 은행 소유는 불가능하게 돼 있다. 그러나 보험회사를 비롯한 상당수의 비은행 금융기관은 산업 자본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비은행 금융기관과 산업 자본과의 분리 문제는 일부에서 조속한 시행을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 경제 현실과 국제적 추세를 감안하면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금융지주회사법은 외환위기 이후 부실화된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00년에 제정됐다. 그런데 삼성애버랜드 사태에서 나타난 것처럼 금융지주회사법은 산업 자본과 금융기관의 분리 수단으로 이용될 수도 있다. 특히, 건전한 산업부문을 가진 그룹이 우선적으로 계열 분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 정부는 경영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규제를 무조건 강요할 것이 아니라 기업 환경에 맞도록 손질하고 신축적으로 적용하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애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화 논란은 기업과 정부 모두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 지주회사의 정의는 ‘주식의 소유를 통하여 자회사의 사업 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 규정돼 있다. 애버랜드가 이 정의에 합당하는지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더 나아가, 무리한 규제로 기업의 경쟁력을 훼손하지 말고 주가 변동에 취약한 현행 지주회사 규정을 전향적으로 개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홍기택 (중앙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5. 1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