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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물가안정이다
2004-04-16
이제는 물가안정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17대 총선 선거일이 되었다. 선정적이고 전투적인 정치구호는 서민들 입장에서 보면 권력에 혈안이 된 그들만의 구호이지, 애당초 민생과는 무관한 부르짖음인지도 모른다. 총선 다음날이면 거리마다 ‘당선사례’라는 플래카드가 주인없는 인사치레를 하겠지만, 서민들에게 가장 급한 것은 정치 하는 나리들의 거창한 구호보다는 연초부터 치솟은 물가를 하루빨리 잡는 민생고 해결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정부는 물론이고 모든 정당들이 총선에 ‘올인’하느라 재정의 조기집행을 통한 경기부양 및 선심성 공약 발표에 혈안이 되어 물가안정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물가상승이 서민들 가계에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은 그 내용이 주로 생필품가격의 급등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이미 지난 3월까지 3.3%가 올라, 정부 억제치인 3%를 넘어선 것도 문제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장바구니 물가의 핵심인 채소류는 전년도에 비해 2∼6배로 폭등했고, 밀가루·라면·음료 등의 생필품은 6∼10%의 상승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4월부터는 물가가 진정될 것이라고 장담하지만, 이번 물가상승의 내용을 보면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몇가지 심각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첫째, 이미 지난해 3.1%의 저성장률을 보인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국민행복지수를 가장 나쁘게 한다는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하의 물가상승) 조짐이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미 극도로 양극화된 소득구조 하에서 원자재와 생필품 가격 등의 상승은 서민들의 소비구조를 왜곡시켜 엥겔지수를 더욱 증가시키는 구조적 악순환을 가져온다. 부유층이나 고소득층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가품들은 특소세 인하를 통해 오히려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이는 애당초 서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에 반해 생필품 가격은 급등하고 있어 서민들의 후생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셋째, 이번 물가상승의 원인이 구조적인 대내외 경제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이미 1분기에만 43조4000억원의 재정자금을 풀어 작년 동기보다 4조원이나 많이 집행하였다. 이는 연간 계획규모의 27.3%의 집행 실적이라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서 정부가 올들어 빠른 속도로 시중에 돈을 풀었다는 것을 뜻한다. 더욱이 버스·지하철·택시 등 그동안 인상을 억제해온 공공요금이 하반기부터 줄줄이 인상되는 데다 총선을 전후한 각종 개발계획과 고속철 주변의 개발 기대가 상승해 물가불안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내수증대로 인해 철강 등의 국제원자재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고, 중동지역 불안으로 국제원유가가 급등, 생산자물가의 상승을 통해 소비자물가에 반영되어 우리 물가경제를 구조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상황을 살펴볼 때 이번 물가상승의 조짐은 정부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더욱이 극도의 내수부진 상태에서 오직 수출에만 의존하는 현 경제구조 하에서 환율하락을 언제까지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기업투자가 부진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금리를 인상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정부는 구조적인 물가상승 요인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개발과 관련된 부동산가격 상승 등과 같은 통제가능한 수요견인형 상승요인부터 우선순위를 정하여 제어하고, 원자재 등과 같은 비용상승형 요인들은 선물시장을 적극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하여 물가안정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표심을 향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을 서슴지 않았던 정치권은 더 이상의 미사여구로 국민들을 현혹하지 말고, 첫째도 민생이요 둘째도 민생이라는 각오로 발등에 떨어진 불인 ‘물가안정’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정부를 채근하고 감시하여 17대 국회가 민생국회로서의 첫걸음을 내딛기 바란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4. 4. 15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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