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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법률 허브'를 만드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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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6 |
| 동북아 '법률 허브'를 만드려면 법률시장 개방의 해일이 밀려오고 있다. 다국적기업들은 우리나라의 법률 서비스에 불만을 품고 법률시장 개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으며, 외국의 대형 법률 회사들은 지사 설립을 모색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변호사 업계는 이러한 요구에 대해 '지연작전'으로만 대응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해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1차 법률시장 개방안을 제출하면서, 외국 변호사는 자신이 자격을 취득한 나라의 법에 대한 자문, 영주권.시민권 등 취득과 국제공법 등에 한해서만 법률자문을 허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적 개방안으로 개방 압력을 무마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법률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변호사 업계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법률시장이 전면 개방되면 국제계약이나 분쟁사건에서 외국 변호사나 법률회사가 수임을 독차지하거나, 외국 법률회사가 한국 변호사를 대거 고용해 국내 변호사와 경쟁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농업마저 개방돼야 하는 냉혹한 국제현실을 고려할 때 국내 변호사들의 독과점 특권이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사법시험 합격자 수가 늘어나 사법연수원을 졸업해도 취업이 힘들고 기존의 변호사 업계도 힘들어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으나, 이러한 변화는 법률시장 개방이 가져올 '태풍'에 비하면 '미풍'에 불과할 것이다. 오히려 현 시기는 정부, 변호사 업계 및 학계가 법률시장의 전면 개방을 예비하면서 이를 주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뜻을 모아야 할 때다. 먼저 현재의 법률가 양성제도를 고쳐야 한다. 전 대학을 '고시열풍'으로 몰아넣는 현행 고시제도는, 국제화 시대의 법률가에게 필수적인 외국어, 경제.경영, 과학.기술 등의 대학전공 공부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다. 대학 전공을 팽개치고 수년을 신림동 고시촌에서 생활하며 고시공부를 하고, 합격 후에도 사법연수원에서의 좋은 성적을 위해 또 신림동에서 연수원 예비학원을 다녀야 하는 현실은 참담하기만 하다. 다양한 전공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법률가로 키워내 사회 각 분야에서 활약하도록 만드는 법학교육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지난해 조직된 '사법개혁위원회'는 이러한 문제를 심각하게 논의해 현행 법학교육제도를 혁신하는 대안을 제출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변호사들은 외국 변호사가 넘볼 수 없는 자신만의 특장(特長)을 개발하고, 법률회사 간의 제휴.합병을 계속 이루어 가면서 세계적 수준의 법률서비스를 공급할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한국 변호사의 국제경쟁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우리 법률시장은 외국 법률회사에 의해 간단히 장악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법률시장 개방에 대해 수세적으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법률시장 개방의 파고(波高)를 잘 타고 넘으며 한국을 동북아의 '법률 허브'로 만드는 방략(方略)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변호사회가 할 일은 사법시험 합격자 수의 축소를 위한 로비가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변호사의 직역(職域)을 넓히고 전문분야를 심화시키는 운동일 것이다. 법률시장이 개방될 때 중요한 것은 변호사의 수가 아니라 변호사의 질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도 '동북아 경제 허브' 전략의 성공을 위해서는 이를 법적으로 뒷받침해줄 인력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법률시장의 전면 개방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다. 그동안 정부, 변호사 업계 및 학계는 법률가 양성제도를 혁신하고 변호사 능력을 고양하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 진력해야 한다. 정부가 '농업개방'의 시기와 범위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국내 농업의 혁신적인 구조조정과 개혁을 진행시키지 못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것이다. 조 국 (서울대 법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1. 25 시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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