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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측가능한 정치, 대통령부터
	2004-01-15
예측가능한 정치, 대통령부터 세상을 난세로 보는 ‘불확실성의 시대’의 저자인 갤브레이스는 “시간은 항상 사회과학자를 망신시켜 왔다”고 주장하면서 정치 현상에 대한 예측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불확실성을 예측한 갤브레이스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변화무쌍한 한국의 정치 현상은 정치학을 수 십년 연구한 정치학자들조차 수년은 고사하고 불과 일주일도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변하고 있다. 올해 최대 정치 이벤트인 4월 총선이 불과 9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출마할 선거구조차 확정되지 않아 4월 선거가 어떠한 형태로 치러질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주 새로 구성된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선거구 획정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정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2월 초순이나 돼야 결정될 것 같아 정치권의 불확실성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제 노무현 대통령은 오는 4월 총선 후에 정치권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후 있었던 수차례의 기자회견에서 정치 문제를 가장 많이 언급한 노 대통령이 이번에는 경제 문제 등 민생 문제를 제일 강조하여 상대적으로 정치 문제는 비교적 간단하게 언급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실업자가 즐비하여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른바 ‘이태백’까지 등장하고 있는 판에 불신을 받고 있는 정치 이야기를 해 봐야 이득될 게 없다는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이해할 만하다. 대통령은 총선과 재신임 문제,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의 총선 총동원령, 열린우리당의 입당 문제 등에 대해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만을 언급했거나 또는 유보적인 발언을 함으로써 총선거까지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노 대통령의 불확실한 정치적 태도는 총선에 즈음한 유권자의 선택에 혼란을 줌으로써 한국정치의 불예측성만 가중시키고 있다. 오히려 대통령은, 비록 정쟁의 빌미를 제공하는 한이 있더라도 총선시 유권자들의 선택 폭을 확대시키는 의미에서라도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해야 한다. 우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조속한 입당이다. 대통령은 자신과 정치노선을 같이하고 있기 때문에 입당하는 것이 도리라면서 측근 비리 혐의에 대한 특검 수사 결과가 나온 이후, 당에 부담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될 때 입당하겠다는 입장은 정당정치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대통령은 정치적 효과만을 고려, 입당 시기를 저울질하기보다는 열린우리당원 자격으로 정당정치 발전과 효과적인 국정 수행을 위해 당과 정책을 협의하는 등 당당한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당원 자격 없이 열린우리당을 외곽에서 지원하는 자극적인 발언만 하여 소모적 정쟁을 유발할 필요가 없다. 총선과 재신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번 회견에서도 대통령은 재신임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 해 10월 대통령이 언급한 재신임 문제는 국민들이 이미 잊어 버린 지 오래고 야당 역시 비슷한 생각인데 유독 대통령만 기회 있을 때마다 재신임을 거론하고 있어 재신임 문제가 언제 어떤 형태로 비약될지 오히려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 기자회견에서 총선과 재신임은 야당의 반대와 법적인 문제 때문에 어렵다면서 확실한 태도를 표명하지 않았다. 더 이상 재신임 문제를 거론치 않겠다든지, 또는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지지 결과를 재신임으로 간주,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든지 분명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통령은 올해를 정치개혁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했다. 정치개혁에는 선거의 공정관리도 중요한 요소이다. 선거 공정관리를 위해 대통령의 엄정 중립을 천명하고 선거 사범은 엄격하게 다스려 불법 선거를 뿌리뽑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해야 하며, 이는 대통령부터 앞장서야 한다. 노 대통령이 올해 최우선 국정 과제를 일자리 창출로 정하고 이를 위해 선진적 노사 문화 형성을 통한 경쟁력 강화를 아무리 주장해도 이는 정치 질서의 안정 없이 이룩될 수 없다. 안정된 정치 질서는 불확실성보다는 예측 가능한 정치 상황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대통령 스스로 총선에 임하는 정치적 태도를 분명히함으로써 유권자들로 하여금 여야간에 예측 가능한 정치 질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바란다. 김영래 (아주대 정치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 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