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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경제 전망 묻지 마세요
2004-01-10
새해 경제 전망 묻지 마세요 직업이 경제학자다 보니 앞으로 경제가 좋아지겠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그럴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다. 간단히 답하기 어려워 적당히 얼버무리면 경제학자가 이 모양이니 경제가 나아질 리 있냐고 비난이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마당에 자숙하는 게 도리겠으나 한편으로는 억울한 마음도 든다. 내수 침체에도 불구하고 수출 호조 덕에 올해는 4~5% 성장이 예상된다고 쉽게 대답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답을 망설이는 까닭은 올해 성장률 예측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좋아지겠느냐' 질문땐 곤혹 부존자원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지난 반세기 한국경제가 고속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교육열과 우수한 인적자원의 덕이었다. 그러나 우리 교육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제는 교육이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하향 평준화로 공교육의 질이 떨어지자 낮에 학교에 가서 잠을 자고 밤에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학생들의 일과가 되었다. 몇만원은 아까워하면서 3백60만 중.고생들이 매일 낭비하는 6시간의 천문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셈이다. 또한 쉬운 수능시험만을 강요하다 보니 새로운 지식 추구보다 반복 학습만이 능사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투자되지만 고급 인력이 생기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교육의 성과가 사회.경제 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20~30년 시차를 가지고 나타나게 마련이니, 우리 사회는 곧 교육 붕괴의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다. 교육문제가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가 되었기에 재정경제부 장관이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주장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교육 개혁은 교육단체의 반발로 한 걸음도 못나가고 있다. 사후적 평등주의, 계층간 위화감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들의 눈에는 평준화를 반대하는 어떠한 주장도 천박한 경제논리일 뿐이다. 경제논리와 교육논리가 다르다고 믿는다면 앞으로 경제가 왜 이 지경이냐고 묻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노사와 고용문제 역시 이해집단간 갈등으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노사와 고용문제는 단순히 기업과 노조의 양자 대립 이상의 문제다. 근로자가 볼 때 임금은 가족의 생계수단이다. 따라서 임금의 높고 낮음은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한 액수인가에 의해 평가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해서도 식료비.주거비 등 기초생활비가 높은 편이다. 선진국의 경우에는 사치품 가격이 높더라도 생필품 가격은 수입을 통해서라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 우리도 노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강성 노조를 비난하기에 앞서 기초생활비부터 낮춰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은 농촌 국회의원의 반대로 국회통과가 난망하다. 칸쿤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에서 우리 농민은 전 세계를 대표하여 농산물시장 개방 반대 데모를 성공적으로 주도한 바 있다. 주택정책 역시 경제논리는 뒷전이다. 어렵사리 환경단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남지역의 그린벨트를 해제했더니 비싼 땅에 서민 아파트를 저층으로 짓고 있다. 차라리 고급 아파트를 분양하고 그 돈으로 외곽에 서민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하자는 주장은 천박한 경제논리일 뿐이다. "부자만 강남에 살란 말이냐"는 한마디가 수요.공급을 논하는 경제논리보다 선거철 표 몰이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장바구니 물가와 서민 주거비보다 강남 타워 팰리스 가격 억제가 정책목표가 되는 한 노사와 고용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1만불 소득' 지키기도 힘들 것 이제는 재정.통화정책과 같은 전통적 경제정책만 가지고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게 되었다. 다양한 이해집단들이 각자의 이익만을 주장한다면 올해는 수출 호조 덕에 4~5% 성장을 하더라도 당분간 1만달러 소득 수준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집단간 이해갈등을 조화시키고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더라도 경제논리를 관철시켜 줄 리더십이 절실한 때다. 이창용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4. 1. 8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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