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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경제 시스템’ 절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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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02 |
| ‘한국형 경제 시스템’ 절실 지난 해 우리 경제의 성적표는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부진과 실망을 기록하고 말았다. 근래에 없었던 미국의 높은 성장과 10여년 불황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 일본 경제의 회복세, 활발한 해외 직접투자의 유입에 힘입은 중국의 고도 성장 등 주변 상황에 비추어볼 때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초라하고 암담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2003년의 경제성장률은 당초에 추정했던 5% 수준의 절반인 2%대에 머물러 개발연대에 겪었던 2차 석유파동 및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의 마이너스 성장을 제외하고는 가장 저조한 기록을 남겼다.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룩한 것도 세계 경제의 경기 회복과 중국 경제의 활발한 성장에 힘입어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달성한 수출 호조에 따른 것이며 민간 소비와 기업 설비투자는 꽁꽁 얼어붙은 채 회복 기미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와 같은 내수 부진의 요인 중 민간 소비의 위축은 IMF 경제 위기 이후 단기 경기 부양을 위한 신용카드 관련 시책 등 김대중정부의 정책 실패로 인한 가계 부실과 신용불량 문제라는 유산이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하지만, 기록적인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설비 투자가 매우 저조한 것은 민간 경제 주체의 경제 활동 여건에 대한 비관적 인식을 새 정부가 불식시켜 주지 못하고 있는 데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대부분의 경제 연구 기관들이 새해에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정책 과제로 노사관계의 안정, 기업의 의욕 고취,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경제정책의 일관성 확보 등을 들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 경제에서 기업 투자 활동의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새해의 우리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장기 침체로 가느냐,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성장 동력을 갖추어 경제 회복으로 가느냐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경제 침체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성급한 경기 부양책을 동원해 왔던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일시적 경기 부양을 위한 소비 촉진이나 부동산 정책이 가져다주는 심각한 부작용에 대한 뼈저린 반성이 새해 경제 정책의 첫 번째 교훈으로 자리매김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 회복과 성장 잠재력 확충을 위한 핵심 정책 수단은 위에서 든 기업 투자 활동의 걸림돌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감으로써 꽁꽁 얼어붙은 기업의 투자심리를 녹여가는 데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전투적 성향의 노조, 뿌리 깊은 노사간의 불신, 총선을 앞둔 정치적 불확실성의 증대, 과도한 이익집단간의 갈등과 같은 구조적 요인들이 한꺼번에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문제 해결의 원칙과 방향을 확고히 정립함으로써 모든 경제 주체들의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 회복을 위한 공동 노력에 청신호를 제공하는 계기만은 조기에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 기업들이 한국을 투자 적지로 선정하도록 경영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 주는 각종 제도 개선과 물적 기반 조성을 적극 추진하는 민간 투자 활성화 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 놓을 필요가 있다. 그 때에야 비로소 실업 확대와 고용 불안 해소, 민간 소비의 유도, 기술 개발 등 일련의 정책 과제들은 마치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 순조롭게 풀려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새해의 우리 경제도 밖으로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안보 불안, 한·칠레에 뒤이은 일본 등 여러 나라와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교착 상태에 빠진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 연내로 타결해야 하는 쌀 재협상 등 중대 통상 현안들을 안고 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과다한 가계 부채, 심각한 청년 실업, 민주화 과정에서 표출되는 각종 이해 집단 간의 갈등에 대한 대응 능력 미흡 등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은 이제 IMF 사태 이후의 짧지 않은 경험을 통해 더 이상 이와 같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는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는커녕 현상 유지도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심각한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 결국, 위기 탈출을 위해서는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확립과 성숙된 사회 문화적 풍토 조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새로운 정치적 리더십의 확립은 총선에서의 다수 의석 확보를 통한 정국 주도와 같은 정략적인 차원이 아니라 분열과 갈등 속에서 낭비되고 있는 국민의 에너지를 통합해서 국가 발전의 잠재력 회복에 활용할 수 있는 성숙된 경제 사회 시스템의 구축을 중심축으로 삼아 접근해야 할 것이다. 대외적으로는 우리의 지정학적 특수성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세계화와 지역주의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방향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대내적으로는 노사·금융·산업 등 각 분야의 구조조정에 의한 이해관계를 상생(相生)의 원리에 따라 조정해 나갈 새로운 한국형(型) 경제 사회 시스템의 확립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정영일 (서울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 2 포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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