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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경제 낙관할 일 아니다
2003-12-23
새해경제 낙관할 일 아니다 연말이 다가오면 항상 여러 연구기관에서 새해의 경제전망치를 앞다퉈 발표하기 마련이다. 금년은 새 정부를 맞이하여 연초부터 국민들이 큰 기대 속에서 출발했는데 오히려 더 큰 실망을 안고 한 해를 마감하게 됐다. 실망이 컸던 만큼 새해에 대한 희망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물론 신년 경제에 대한 전망 역시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낙관적으로 생각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두 달 전의 전망치 4.8%를 수정하면서까지 5.3%로 높여 발표했다. 한국은행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상실해 잠재성장률이 4.8%로 낮아졌다고 하면서도 내년도 성장률을 5.2%로 높게 예측하였다.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보고 있기 때문에 5% 이상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는 2배나 높은 성장률로서 아마 지구상에서는 중국과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최고 수준일 것이다. 그러나 소비와 투자 등 국내 경제의 실상과 특히 경제 시스템의 틀과 구조를 보면 고도성장을 기대할 수 없는 요인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낙관적인 전망치가 실상이 되기보다는 허상이 될 공산이 크다. 최근의 심각한 신용불량자와 실업자 증가, 집단이기주의와 과격한 노사문제 등보다도 더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우리는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30~40년간 압축성장을 계속하면서 산업구조를 뒤틀리게 만들었고 경제 성장의 결과로 오히려 식량을 비롯한 생활 용품의 수요는 고갈돼 가고 경제의 틀과 조직은 조로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수천년간 선조들은 ‘쌀과의 전쟁’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해 빈곤 속에서 살아 왔으나 우리 세대에서 처음으로 먹는 문제를 해결했다. 전체 인구의 7%인 358만의 농민이 작년에 3422만 섬의 쌀을 생산하여 넘치는 쌀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쌀이 남아돌아 귀한 줄 모르고, 더욱이 먹지 않아 한 사람이 1년간 겨우 90kg 정도를 소비하고 있다. 농업이 발달한 결과로 농업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지면서 이제는 풍요 속에서 비만 때문에‘살과의 전쟁’을 하고 있다. 먹는 문제가 해결되면 다음으로는 생활 용품을 찾기 마련인데 서양은 300년 전, 미국은 200년 전, 일본은 100년 전에 공업화를 해서 초과이윤으로 재미를 보았다. 그런데 우리는 겨우 30∼40년 전에 세계 도처에서 차관을 들여와 세계적인 공업을 시작했는데 잘 되지 않는다. 흔히 그 이유를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제, 이라크전쟁, 북한 핵문제, 그리고 노사 갈등, 집단이기주의 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들도 원인이 되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후발 국가의 공업화 속도가 빨라 단기간 안에 제품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그 수요가 스스로 고갈돼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몇 년 전의 국산품 대부분은 얼마 쓰지 못하는 소모품이었으나 이제 국산품도 품질이 향상되고 그 수명이 연장돼 좀처럼 망가지지 않는다. 얼마 전만 해도 2~3년 정도 쓰던 TV, 냉장고, 에어컨, 자동차 등의 유형 자산이 이제는 그 수명이 반영구적인 내구재로 변해 가고 있다. 이렇게 경제가 발전한 결과로 농업과 같이 공업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산업구조의 조로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새로운 산업에 따른 새로운 수요와 수출 수요가 계속될 수 있지만, 기존의 농업과 공업이 심각한 신종 불황에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근의 경제가 어려운 것도 종래의 경기순환 논리에 따른 불경기만이 아니라 신종 불황이 그 원인이 되고 있다. 일본 경제가 계속 어려운 것도 바로 세계적인 공업국으로서 그 제품의 질이 좋아진데다 국민 모두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요가 감소하고 그에 따라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경제가 계속 번창하는 것은 전통적인 산업이 강해서라기보다는 수요가 무한대라고 할 수 있는 무형 자산인 지식·정보·기술·문화 등의 산업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내년도 우리의 경제는 그 틀을 바꾸지 않는 한 국내의 소비와 투자가 크게 늘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낙관할 수만은 없다. 따라서 정부는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지식산업·정보산업·기술산업 등을 발전시켜야 하며, 우선 기존 산업을 지식화하고 정보화하며 기술화하는 신산업 전략을 세워 산업구조의 조로화현상을 방지해야만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 이종훈 (중앙대 경제학 명예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12. 23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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