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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문제, 개인에만 맡길건가
2003-12-23
가정문제, 개인에만 맡길건가 지난 금요일 뉴스를 보다 눈과 귀를 막고 싶었다. 24살의 정신병력이 있는 아버지가 여섯 살, 다섯 살 두 자녀를 한강에 던져 버렸다는 소식에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기 곤란할 지경이었다. 이 추운 날, 대체 이 아이들은 왜 짧은 세상을 이렇게 살다 가야 했는지 말문을 열기조차 힘들었다. 충분히 예방이 가능한 사고나 재난이, 특히 무방비 상태의 어린이들을 이렇게 덮치는 것을 볼 때면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회의와 분노를 참기 어려워진다. 가정문제를 상담하는 현장에서 일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사건은 현재의 심각한 가정과 가족문제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24살인 부부는 이들 두 남매를 두고 직업 없이 부모로부터 어느 정도의 보조를 받아 생활해 왔으며, 카드 빚 등 부채 때문에 고민해 왔다고 한다. 일반적이라 보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에 부모가 되었고, 부모가 되어서도 자녀를 포함한 자신들의 삶을 거의 책임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이보다 훨씬 빨리 혼인하고 자녀를 두었는데 나이가 무슨 관계인가 하는 것은 우문이다. 혼인하고 부모가 되는 것은 정서적인 자립과 경제적인 독립을 어느 정도 이루고 나서야 가능한 일이고,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는 이 과정이 훨씬 늦춰졌기 때문이다. 또한 마을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던 과거에 비해 파편화된 도시생활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혼인과 가정생활을 시작하기 위한 개인적인 준비가 더욱 절실하고, 이를 위해 부모 됨, 남편 됨, 아내 됨의 의미에 대한 혼전 준비교육 등을 정책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사건의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이처럼 혼인과 가정생활에 대한 가치관의 부재와 사회구조적인 정책의 부재에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과도기적 상황을 겪고 있으며 혼선을 초래하고 있지만, 특히 혼인과 가정생활 문제는 심각하기 그지없는데다 정책당국 또한 무관심하거나 왜곡된 방향의 정책을 제시하는 우를 범하고 있어 더욱 문제라고 본다. 통계적으로 혼인율과 출산율의 저하, 이혼율의 급증으로 드러나는 가정문제의 일단을 ‘부부의 날’ 제정이나 ‘셋째 자녀 학비 보조’와 같은 단편적인 정책이나 이벤트를 만드는 수준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아서는 정말 곤란하다. “내 인생은 소중하니 이혼해야겠다. 아이들은 맡을 수 없다” “내 마누라 내 새끼 버릇 좀 들이려 내가 손 좀 댔기로서니 뭐가 문제냐” “결혼, 부담스럽다. 아이들은 더 싫다. 내 인생 좀더 즐기면서 살고 싶다” 등이 가족과 결혼을 둘러싸고 요즘 너무나 쉽고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들이 아닌가. 우리 모두의 반성이 요구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내 나이와 비슷한 부모 세대는 자식들에게 다 바쳤지만, 결국은 결혼과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것은 남겨주지 못한 채 부담스럽다는 인식만 심어준 셈이 되었다. 더 젊은 세대들은 가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보다는 자기 인생을 잘살기 위해 멋있게 노력하면서 매우 편리하게 이미 태어난 자녀를 마음대로 자기 인생에서 빼기도 하고 더하기도 한다. 이것은 미성숙하고 이기적이라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으며, 이것이 극단화하면 아이들을 소유물로 생각하여 학대하고 방치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는 것이다. 결혼과 가정생활에 대해 문화적으로 공유할 가치관이 부재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문제이고, 가정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겨 두었던 정책당국이 책임을 깊이 느끼고 법과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어린 영혼들이 이제는 따뜻하게 잠들기를 빈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12. 23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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