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지평이 넓어진다

'개혁' '진보' 일변도서 '보수층 시민단체' 창설 움직임... 기존 시민단체선 '자성' 목소리도

시민단체의 지평이 넓어지고 있다. '개혁'과 '진보'를 앞세우며 한 목소리, 한 몸짓을 견지해온 시민단체가 변화와 분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 내부에서 지금까지의 활동과 노선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한편 기존 시민단체와는 색깔이 다른 시민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시민단체의 변화 양상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것은 3월 12일 창립대회를 갖는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작년 4월 탄생한 40 50대 교수들과 지식인들의 모임인 비전@한국이 주축이 된 이 단체는 운동권 출신 인사들과 일부 명망가 중심의 기존 시민운동이 '침묵하는 다수 시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왔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명실상부한 '시민 중심의 시민단체'를 표방하고 있다.

이 단체에는 우리 사회의 이른바 보수층을 자임하는 원로 학자와 각계 인사들이 대거 참가할 예정이다. 예컨대 공동대표는 김진현 전 문화일보 회장과 유재천 한림대 부총장, 송복 연세대 교수, 송병락 신용하 곽수일 서울대 교수,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비전@한국 공동대표), 석종현 단국대 교수 등이 내정 혹은 접촉 중이고, 고문단에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신일철 고려대 명예교수, 박성조 자유베를린대 교수, 이정석 대한언론인회 회장, 김종규 엔에스에프(구 삼성출판사) 회장, 김융일 가톨릭대 사회복지대학원장 등이 참가할 예정이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곧 출범

'바른사회...'는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한 실무조직과 각 분야별 위원회 체제로 구성될 예정인데 사무총장에는 이영조 경희대 교수가 내정됐다. 또 정치 행정(이영조 사무총장이 겸임), 경제(조동근 명지대 교수), 언론(한영탁 전 세계일보 논설위원), 문화예술(김종헌 예총사무총장), 사회복지(유석춘 연세대 교수) 등 각위원회 담당자도 내정된 상태다. 이밖에 여성위원회 담당자는 현재 물색 중에 있으며, 앞으로 각 대학의 '침묵하는 다수 학생'들을 조직할 청년 대학생위원회도 둘 예정이라고 한다.

'바른 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지난 2월 25일까지 약 500명의 발기인을 모집했고 3월 12일 창립대회까지 1000명의 발기인 모집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발기인에는 각계의 명망가나 전문가뿐 아니라 샐러리맨 등 일반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발기인에는 남중구 동아일보 이사,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이한수 전 서울신문 사장 등 전 현직 원로 언론인 20여명이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공동대표를 맡은 김석준 교수는 "기존 시민단체는 우리 사회의 머조리티(majority)와 중심에 발딛지 않고 주변부에 머물렀다"며 "시민없는 시민운동, 히어로(hero) 중심의 시민운동이라는 기존 한계를 넘어 우리 시민사회의 성격을 그대로 대변하는 시민단체를 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바른사회...'가 추구하는 기본 이념은 자유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하지만 실사구시 정신을 앞세워 유연하고 열린 자세로 합리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기존 시민단체와는 선의의 경쟁을 벌이겠다고 한다. 김석준 교수는 "참여연대가 주도해온 소액주주운동의 경우 대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정적 측면도 있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며 "우리는 기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는 브레이크 기능보다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엔진 기능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바른사회...'는 기존 시민단체들이 상근 조직의 비대화와 관료화라는 폐단을 노출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 사무처 등 상근 인원 10명 안팎으로 최소화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전문가와 일반시민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활동 중심으로 움직일 계획이다. 각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이슈를 개발해내고 정책 대안을 만들어 가는 '상향식 활동'을 지향할 방침이라고 한다.

재정 문제는 회원들이 월 5000원 이상 납부하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해결할 예정. 김석준 교수는 "우리의 목표와 정신을 지지하는 각 사회 지역 단체들의 인터넷 메일링 기능을 통해 일반시민들에게 동참 권유를 할 계획"이라며 "소수의 목소리에 짓눌려온 다수들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장열(jrchung@chosun.com)

주간조선 2002.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