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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의 대화
2006-09-29
손학규 前지사 ‘민심대장정’ 90일… 김지하 시인과 논두렁 대화 [문화 일보 2006.09.27] 손학규 “벼도 쓰러진 방향서 세우는 게 순리 깨달아” 김지하 “농심은 우주 깨닫는 마음… 정치인들 새겨야” 한나라당 대권주자중 한명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민심대장정을 시작한지 27일로 90일을 맞았다. 손학규는 지난 6월30일 도지사 이임식을 끝낸 뒤 배낭을 메고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며 수원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남 장성으로 향했다. 그동안 손학규는 경기를 제외한 전국의 논과 밭, 공장, 탄광을 돌며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민심을 청취했다. 지난 22일 오후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의 골짜기에서 태풍으로 쓰러진 벼를 세우고 있던 손학규를 김지하 시인이 찾았다. 김지하 시인은 손학규의 서울대 문리대 6년 선배로 1960, 70년대 민주화운동을 함께 하면서 40년 가까이 막역한 사이로 지내왔다. 서울에서 찾아온 김지하에게 막걸리 잔을 건네며 논두렁에 앉아 농사일과 정치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김지하 = (멀리서 손학규의 헝클어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을 보며) 야 봉두난발이 따로 없네. 수염이 아주 잘 어울려. 그래도 얼굴은 어린애처럼 맑아졌네. 손학규 = 고맙습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막걸리나 한잔 합시다. 김지하 = 농사일이 힘들어? 아니면 공장일이 더 힘들어요? 잠자리는 어떻게 해결합니까? 손학규 = 농사일이 더 힘들어요. 동가식서가숙… 잠자리 걱정은 안합니다. 날아 다니는 새가 잘 자리 걱정 안하듯이요. 그래도 인심이 좋아 두달반동안 전국을 돌아 다니면서 하도 잘먹어 살이 안빠집니다. 김지하 = 경기도지사 할 때 보다 지금이 더 좋아 보이네. 국민들 사는 모습도 들여다 보고, 이게 정치인들의 필수과정인데 손 지사가 직접 나선 것이 너무 좋아. 그런데 몸은 힘들것 같아.하하하. 손학규 = 우리가 학생운동하기 전에는 농촌 계몽운동이 있었지만 우리때는 많이 약화돼 농촌에서 이렇게 일하는 게 처음입니다. 김지하 = 손 지사 때는 학생들이 도시 빈민과 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많이 가졌지. 김진홍 목사의 활빈교회, 권오균 목사는 특수교회 등 빈민선교 센터를 중심으로 활동을 했지. 손학규 = 평신도 운동을 위해 기독교쪽으로 들어간 게 제가 첫 케이스였어요. 그때 문리대 후배들의 반대가 많았어요. 김지하 = 직접 농사일을 하며 농민들을 만나고 있는데 농업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손학규 = 비용이 들더라도 농업과 농촌은 살려야 합니다. 농촌이라는 공동체가 무너져서는 안되거든요. 도지사때 보니까 휴대전화, 반도체가 우리나라 전략 산업이기는 하지만 그 공장에는 폐수처리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갑니다. 공산품 만드는데 공해처리 비용이 들듯이 국가 환경조성을 위해 농업에 비용을 써야 합니다. 세계화의 물결과 시장논리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농촌이라는 공동체처럼 국가가 공적 비용을 들여서 유지해야 하는 영역이 반드시 있습니다. 교육과 공공 의료분야도 마찬가지고요. 김지하 = 공공 부문이 교육에도 관여해야 합니까? 손학규 =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벽지의 초등학교는 가능한 없애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가 없으면 커뮤니티가 없어집니다. 농촌 초등학교의 가을 운동회에 농민들이 다 모여 오자미를 던져 바구니 터뜨리기를 한다든지, 고구마와 밤을 삶아와서 나눠먹는다든지, 씨암탉을 잡아 선생님에게 준다든지… 학교는 공동체생활의 센터역할을 해왔습니다. 학교가 없어지고 어린이가 없으면 공동체는 무너지니까요. 김지하 = 도지사 시절 외국 첨단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창출과 경쟁력 강화뿐만 아니라 분배와 서민 생활의 질, 복지문제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이런 길을 중도라고 해도 되나? 손학규 = 형님이 더 잘아시겠지만 용어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내가 요즘 한나라당 관계자를 만나면 보수를 표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보수는 1970년대까지 개발독재와 냉전논리, 부패, 정경유착이 횡횡할 때 사용된 용어입니다. 중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곡예를 하자는 것 아닙니까? 김지하 = 요즘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역동적 중도니 실천적 중도라는 용어가 나오고 여야 모두가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도 있던데. 손학규 = 정치에서 기회주의는 불신의 씨앗입니다. 개발·권위시대 반독재투쟁의 부산물이 ‘사쿠라’입니다.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국민에게 불신의 씨앗을 제공합니다. 통합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개발해 차원을 바꿔야 합니다. 21세기는 다원주의입니다. 김지하 = 누가 중도주의자라고 부르면 싫은가? 손학규 = 개념상 오해 가능성도 있지만, 중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통합이라고 하는 것은 사안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기업의 문제는 시장과 경쟁의 논리로, 농업은 경쟁적이면서도 환경과 복지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교육적인면에서는 경쟁과 복지가 공존하는 것이죠. 보수는 친기업, 친미, 반공 등의 이데올로기와 논리가 있지만 중도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곡예라고 봅니다. 기업에는 경쟁과 시장원리를, 대북문제는 보다 전향적으로, 사안마다 다르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통합의 논리에서는 마땅합니다. 김지하 = 농업을 알아야 환경문제도 알고 농사일이라는게 자신의 리듬과 농산물과 일치시키는 것인데 오늘 쓰러진 벼를 세우면서도 그런 것을 느낄 수 있었나? 손학규 = 벼를 일으켜 세우는데 일정한 방향으로 쓰러진 경우는 왼쪽이나 오른쪽, 어디부터 시작해도 되지만 여러갈래로 쓰러졌을 때는 앞의 것을 걷어내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한참 일한 뒤에야 알았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처음부터 벼가 쓰러진 방향에 따라 몸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처음은 어색했지만 한두시간이 지나니까 벼의 결에 따라 손이 자동적으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순리인 것 같고, 모든 일도 순리에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김지하 = 벼는 생명의 결이다. 그리고 농심은 우주를 깨닫는 마음이야. 농심을 배워야 돼. 정치에 있어서도 생명의 결을 모시듯이 생각을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손학규 = 어느날 과수원에서 사과를 따는데 가위질 하다가 사과에 상처를 두개 냈는데 젊은 주인이 웃으며 3개 라고 하더구만요. 주인은 사과를 생명으로 여기니까 생명을 다루는 나의 행동을 일을 하면서도 꼼꼼히 지켜봤던 것이지요. 김지하 = 농사일 하다보니 세상걱정은 안됩니까? 손학규 = 농사짓는 농민들, 배타는 분들, 중소기업 사장들과 근로자들의 삶의 모습보는게 세상 걱정 아니겠습니까? 김지하 = 미사일이 마구 날아다니는데도 걱정이 안돼? 손학규 = 북한 미사일과 전시 작전통제권 문제 등의 국가 안보문제는 중요하지만 정보가 극히 제한돼 있고 국내외 정치에 대해 이야기 듣고 하는 게 별로 없습니다. 김지하 = 민심대장정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남은 기간동안 어떻게 할 건가? 손학규 = 겸손한 마음으로 정리를 해보고자 합니다. 민심대장정 다니면서 매사에 그때그때 처방을 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보고 들으러온 것이고,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는데 앞서 결론을 내고 장밋빛 청사진을 내서는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좀더 세상을 보러 온 만큼 보고 듣는데 더욱 치중할까 합니다. 김지하 = 정치인은 일상생활의 리포터라고 할 수 있지. 민심대장정 끝나도 그 뜻과 정신은 계속돼야 하고 이 사회와 나라를 위한 역할은 계속 돼야지. 요즘 사람들 만나보면 걱정들이 정말 많아요. 또 논에서만 일하지 말고 지방의 무명 예술가의 말도 들어봐요. (손학규의 얼굴을 보며)그나저나 딱 어울려! 이자리에 설 자세가 돼 있어. 손학규 = 요즘 농촌에는 사람들이 자꾸 없어져서 그런지 정에 많이 주려 있어요. 나주에 가서 트랙터를 몰았더니만 다음날 할머니들이 마을 정자에 모여 “지사님이 트랙터를 몰고 우리하고 꼭같이 일을 하네”라고 하면서 좋아했어요. 김지하 = 그게 핵심이야. 정치가 따뜻해야지. 눈물없는 진리는 가짜거든. 기사 원문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6092701030643164002 출처 : http://cafe.daum.net/sonofkorea www.h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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