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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혹 투명하게 밝혀라
2003-11-14
모든 의혹 투명하게 밝혀라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계속 확대되면서 곤혹스러워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미 수사 대상자로서 검찰의 소환을 받았던 사람은 물론이고, 당장 수사선상에 올라 있지는 않더라도 내심 불안한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정치자금은 특별한 대접을 받아 왔다. 정치자금은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었고, 이들의 초법적 요구에 의해 여러 기업에서 갹출된 것이었기 때문에 정치자금을 법적으로 통제할 엄두조차 내기 힘들었던 시대도 있었다. 이처럼 정치자금 전체를 치외법권적인 것으로 인정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정한 범위의 정치자금, 특히 선거자금에 대해서는 선거 목적 이외의 개인용도 전용 등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대강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왜곡된 관행들이 축적되어서 결국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당사자들조차도 정치자금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지 못할 정도의 복마전이 정치권 내부에 만들어졌고, 그것은 한국 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과거 음성적인 정치자금이 오가는 상황에 대해서는 정부·여당의 요구를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는 변명, 야당에 공개적으로 정치자금을 건네기 어렵다는 이유, 당원의 당비와 국고보조만으로 정당을 운영하기 힘들다는 현실 등이 늘 핑계거리로 등장하곤 했다. 그러면 지금도 똑같은 이유로 음성적인 정치자금이 수수되고 있는가? 정말로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다면, 우리 국민이 피와 땀으로 일궈낸 민주화의 성과는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것인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통해 정당한 권력의 형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번 국민에 의해 정당화된 권력이 영원한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다수 국민의 지지를 통해 수립된 정권이라 할지라도 국민을 기만하고, 국민의 등 뒤에서 불법적인 권력 행사, 음성적인 뒷거래를 일삼을 경우에는 그 정당성이 박탈될 수밖에 없다.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주고받는 것은 뿌리깊은 관행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자금 문제를 너무 깊이 캐면 모두가 불행해진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총체적인 부정과 부패로 꽉 차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정치권의 혼란을 우려해서, 혹은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걱정하면서 정치자금의 문제를 대충 미봉했던 결과가 무엇인가? 결국, 불법적인 정치자금의 고리를 끊지 못함으로써 끊임없이 반복되는 악순환밖에는 없지 않은가? 정치자금은 ‘정치의 젖줄’이라는 말을 흔히 한다. 그런 만큼 원활한 정치자금의 조달과 집행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젖줄이 부정과 부패에 오염될 경우에는 정치 전체가 심각한 중독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잠시 젖의 양을 줄이더라도 오염원을 먼저 제거함으로써 깨끗한 젖줄이 되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정치자금의 전모가 드러남으로 인하여 야기될 정치권의 혼란을 우려하기보다는 환부를 도려내는 용기를 강조해야 할 시점이다.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우려하기보다는 경제가 정경유착을 벗어나 건강하게 새로 태어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때이다. 더구나 선거 비용의 조달 및 집행과 관련하여 적지 않은 불법이 존재해 왔다는 것은 이미 대다수의 국민들이 충분히 미루어 짐작하고 있는 일이며, 공공연한 비밀이다. 단지 구체적인 액수와 수수의 주체 및 사용처 등이 밝혀지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자금 수사를 적당한 선으로 타협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이제 검찰은 정치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뿌리를 캐야 한다. 이를 계속 방치하는 것은 일부 관련자의 이익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국가 전체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것이다. 진정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한다면, 지금이 악순환의 굴레를 깨뜨릴 때인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헌법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11. 14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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