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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폐해 방치할 건가
2003-10-16
고용통계왜곡.pdf
사교육 폐해 방치할 건가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사교육에 의해 붕괴된 공교육을 바로잡는 일을 제 일의 선거공약으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노 대통령이 집권한지 8개월이 지나도록 윤덕홍 교육부 장관은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이렇다할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혼선에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실례로, 교육부가 사교육을 위해 학교 건물을 제공하겠다고 하더니, 건설교통부는 강남 아파트 가격을 잡기 위해 판교에 학원단지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무너진 공교육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보다는 사교육을 권장하는 듯한 근시안적인 미봉책만 제시한 것이다. 정부가 이렇게 교육 문제에 있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혼미 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한국인 특유의 교육열로 인한 현대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현상은 천민자본주의적인 투기 심리와 결합해서 우리 경제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만큼의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유명학원 강사가 몰려 있다는 강남의 아파트 값은 하루가 멀다 하고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치솟고, 장차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이들은 사교육비로 고민하다 못해 이민을 떠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 장관이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한 이니셔티브를 보이지 못하자 급기야 한국은행 총재는 “천민적 교육제도가 강남 집 값을 올린다”고 지적했고, 서울대 총장은 “집 값을 잡기 위해 고교 입시 제도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 동안 우리는 고교평준화가 과외를 잠재울 수 있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다른 경제적 문제와 결합하여 공교육의 근간을 지탱해야 할 교사의 질을 떨어뜨려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공교육을 불신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초래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위 두 사람의 주장처럼 평준화 이전에 있었던 우수한 고등학교들과 자립형 사립고등학교들을 전국에 거점적으로 위치시키면 어떨까. 일류 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처럼 강남 학원가 주변으로만 기를 쓰고 몰리게 되는 현상은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사실, 교육 수준의 차별화는 선진국에서는 사교육 체제의 개입 없이 이미 일반화된 교육정책이다. 프레드릭 셸링도 “진정한 교육은 불평등을 낳는다. 사람마다 개성에서, 성공에서, 소질에서 차이를 낳게 한다. 범용이 아니라 불평등이, 평등화가 아니라 개인의 우월성이 이 세상 발전의 척도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평준화를 집요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고등학교 교육 수준의 질적인 차별화가 중등학교 시기의 사교육을 조장할 것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가 어떤 교육제도를 취한다 해도 우리 사회에서 사교육이 완전히 사라지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선진국들과 비교할 때 아직도 후진적인 국민 의식 수준과 봉건적인 유산으로 남아 있는 학벌 중심주의적인 사회 환경이 크나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즉, 우리가 공교육 제도를 바로잡아 이를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효과적으로 개발하는 방향으로 변화시켜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성숙된 시기를 맞게 되면, 사교육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있는 우리의 모순된 국민 의식을 개조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대한 허위적인 의무감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겸허히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들은 자녀들로 하여금 정당한 경쟁을 하게 하고 자질과 능력에 따라 수준에 맞는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의 교육은 학교를 믿고 학교에 맡겨 두어야 한다. 크게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많은 청소년이 지금처럼 학교 선생님의 가르침을 불신하고 전인교육에는 관심이 없는 주입식 지식만을 파는 학원 강사들에게만 의존하게 되면, 그들에게 결코 정상적인 인격 형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내일의 이 나라를 이끌고 나아갈 어린 학생들이 올바른 인격의 함양 없이 기능적인 인간으로 자라서 어른이 되면, 도덕성과 가치관의 빈곤으로 허영의 굴레 속에서 파행적인 삶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정부는 어떠한 경우라도 지금처럼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하는 무너진 공교육과 날로 득세하는 사교육의 이중 구조 속에 우리의 자녀들을 맡겨둔 채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태동 (서강대 영문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3. 10. 16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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