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문화다] 문화부흥 ‘뉴딜정책’펼치자…문화속에 무궁무진한 富

미래는 문화강국의 시대다. 문화 속에는 무궁무진한 부(富)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주역은 문화라는 부의 광맥(鑛脈)에서 보물(부가가치)을 캐내는 사람들과 그런 인적자원을 더 많이 보유한 나라들이다. ‘코리아 프로젝트 2020’ 기획팀은 이런 인식하에 ‘인재(人才)가 국부다’에 이어지는 제2주제로 ‘미래는 문화다’를 설정하고, 그 첫 번째 실행 방안으로 ‘문화인프라 구축 10개년 계획’을 제안한다. 기획팀은 이를 ‘문화 뉴딜정책(1930년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실시한 경제부흥 정책)’이라고 명명했다.

선진 미래 건설은 총체적 문화 기반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구체적인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기준에서 볼 때 현재 우리의 문화인프라 수준은 형편 없이 부족하다.

‘세계 30대 도시 문화인프라 수준’을 비교 분석한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1998년)를 보자. 서울의 인구 1000명당 공연장 수는 0.024개로 전체 21위, 인구 1000명당 도서관 수는 0.003개로 25위를 기록했다. 도서관 보유장서를 따지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상위 10개국 평균이 1000명당 3823권, 서울은 그 10분의 1도 안되는 248권(26위). 이것이 우리 문화인프라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문화관광부가 펴낸 ‘2001 문화정책 백서(白書)’를 보면 우리는 이미 ‘문화예산 1% 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의 한해 예산은110조원. 이를 감안할 때 문화 예산 규모가 1조원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그러나 피부로 느끼는 ‘체감 문화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그러면 문화 뉴딜 정책에는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 하드웨어적인 문화인프라의 확충은 기본이다. 이를 위해 우선 도서관·박물관·공연장·예술회관 등 다양한 문화공간을 선진국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전국에 100가구 단위로 ‘문화방(文化房)’을 설치하자. 경로당이 고령자들의 안식처가 되듯 문화방은 주민들의 문화 욕구를 달래는 곳이다. 주민들 스스로 기획하고 연출하며 주인공이 되는 ‘문화자치(文化自治)의 표현공간’을 만들자는 얘기다.

하드웨어에 걸맞은 소프트웨어적 문화인프라의 확충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문화의 오지(奧地)’로 버려져 있는 지방을 문화중심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또 지방에 산재한 전통문화의 재발견도 시급하다. 이들 무형(無形)의 문화인프라를 조직하고 전승시키는 노력, 그리고 이런 작업을 담당할 ‘문화 리더’들을 키워내는 노력이야말로 선진 문화강국으로 뛰어오르는 도약의 발판이다. 미래는 문화다.

( 李翰雨기자 hwlee@chosun.com )

‘코리아 프로젝트 2020’의 기획위원들은 ‘문화강국 코리아’를 건설하는 데 우선 시급하다고 판단되는 문화인프라 다섯 가지를 서둘러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인프라는 일반적으로 기반시설을 의미하지만, 문화인프라에는 문화를 운용하고 즐기는 사람까지 포함된다. 다음에 제시하는 5개항은 경제제일주의가 지배했던 과거 특성상, 문화의 공급과 수요를 함께 창출해내야 하는 한국적 고민이 담겨 있다. 이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힘들게 건설 중인 문화인프라는 건물이나 시설로만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될 것이다.

1. 정부는 지방문화 지원예산을 2배 확대하라.

현재 지방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서울과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지금보다 2배, 그리고 다시 4배로 뛰는 기하급수적 약진의 자세가 아니면 고사(枯死) 직전에 있는 지방문화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중앙정부의 지원은 문화를 통한 지방살리기의 구체적 의지를 보여주는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가장 우선되어야 할 과제다.

2. 사장(死藏)된 문화공간을 찾아내고 문화공간 가동률을 높이자.

독자적 문화공간이 확충되기 전까지라도 학교 도서관·강당, 교회·사찰 등의 공간도 지역사회와 연결시켜 문화공간에 대한 갈증을 풀어야 한다. 현재 부족하다고 하는 문화시설마저 가동률은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이 자주 찾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질높은 콘텐츠가 없는 데 제일 큰 원인이 있다. 도서관의 장서확보, 박물관의 다양화, 소규모 문화공간의 활성화를 통해 문화공간의 이용률을 높이자.

3. ‘문화리더’를 키우자.

시민을 문화의 문외한에서 매니아로 탈바꿈시키려면 문화의 관리자와 리더들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요구와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동시에 고급문화의 정수를 시민의 눈높이로 전달해줄 역할은 그들이 해야 한다. 흔히 애니메이터(문화촉진자)로 불리는 축제기획자, 각종 문화강좌의 강사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4. 문화예술인 지도(Map)를 만들자.

지역과 마을의 문화적 향기는 무엇보다 그곳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했던 문화예술인들을 기억하는 데서 짙게 퍼져 나온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그들의 장르를 탐사하는 것만큼 예술에 쉽게 다가가는 방법은 없다.

5. 마음 속에도 문화의 인프라를 깔자.

좋은 음악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느끼는 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눈과 귀야말로 감성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는 감각기관이다. 지금이라도 가까운 문화센터나 각종 강좌를 통해 얼마든지 마음의 문화인프라를 깔아 새로운 영역에 눈뜰 수 있다. 풍요로운 삶은 남들이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듣고 느끼는 데서 시작된다.

"사이버공간의 문화콘텐츠가 국가 경쟁력 좌우"

디지털시대의 문화 인프라는 어떻게 변모해갈 것인가. ‘사이버공간(cyberspace)의 철학자’로 불리는 마이클 하임 교수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손에 잡히는 것에서 잡히지 않는 것으로, 집단적·일방향적인 것에서 개인적·쌍방향적인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정리한다. 디지털 문화 철학의 개척자이자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하임 교수를 김형수(金炯秀)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코리아프로젝트 2020 기획위원)가 이메일·전화로 인터뷰했다./편집자

-21세기는 경제보다 문화가 우선하는 시대가 되면서 문화생산이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것으로 일컬어지는데.

“문화생산은 이제 소수에 의해 독점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몇몇 영화사가 영화산업을 독점하고 있지만, 미래엔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게임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상영하게 될 것이다. 대중들은 문화의 소비자인 것에 만족하지 않고, 직접 문화생산에 뛰어들 것이다. 새로운 문화적 감성을 가진 이들은 지켜보기 보다 직접 경험하거나 참여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많은 그룹들이 다양한 문화적 중심을 만들어낼 뿐아니라, 각각의 문화적 중심들은 디지털 기술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서로를 통해 발전될 것이다.”

-새로운 문화적 맥락에서 가상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가상현실은 현실세계의 재현도 아니고, 포토 리얼리즘도 아니다. ‘가상현실주의(Virtual Realism)’는 현실세계를 3차원·다차원으로 재생산하는 것이라기 보다 현실 세계를 변형시켜 만들어낸 하나의 대안적인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가상현실은 현실세계와 연결돼 있는 동시에 환상과 상상의 세계와도 연결돼 있다. 가상현실 분야에서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Telepresence)가 어떻게 사회적으로 진화할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당신은 시간·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로서의 ‘아바타(Avatar·가상현실 상의 분신)’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왔는데.

“5년간 ‘아바타’ 연구에 매달려왔다, 사람의 인격이 사이버 공간에서 어떻게 진화할까를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아바타는 온라인 상에서 실시간으로 이용자를 캐릭터로 표현해주는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표현된다. 사람들은 아바타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고 채팅이나 게임을 하거나 정보를 교환하게 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아바타를 통해 보는 법, 읽고 말하는 법, 다른 사람에게 행동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바타로 인해 비인간화가 진전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아바타는 이미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온라인 컴퓨터 게임은 물론 Adobe Atmosphere, Blaxxun 과 같은 3D 공간(웹사이트), 파이널 판타지나 슈렉처럼 사람의 동작과 목소리를 그대로 본 딴 영화속의 아바타로 나타나고 있다. 아바타가 더 잘 만들어질수록 직접 사람을 만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직접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중요하게 생각될 것이다.”

-한국은 탄탄한 정보환경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문화 콘텐츠를 확장하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이유는 언어 때문인가.

“인터넷에서 영어가 공통어로 자리잡고 있기는 하지만 말하고 쓰는 언어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누구나 공유할 있는 공통의 시각적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 일본의 애니매이션이나 중국의 쿵푸영화는 미국영화와 만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한국문화에는 전통의상과 춤처럼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를 만들어내는 섬세한 감각이 있다. 미국과 한국의 시각문화가 다르게 발전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말과 글보다 영상문화를 통해 더 잘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을 통한 교류라면 시각예술에 중심을 두고 있는 영상콘텐츠가 교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디지털기술이 우리의 시간과 공간감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특히 인간의 감성에 미친 영향이 궁금하다.

“디지털 기술 발달로 인한 미디어에서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인간과 미디어 사이의 보다 적극적인 상호작용 외에도 컴퓨터 그래픽의 압도적인 힘을 들 수 있다. 미디어의 모든 분야에서 보다 자유롭고 강렬한 이미지들을 만드는데 컴퓨터 그래픽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문자 정보를 시각적으로 디자인된 사진 또는 그래픽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각적인 정보들이 순서없이 동시에 인식되기 때문에 정보의 양이 실제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느끼게 될 것이다.”

-테크노 문화에서 일과 놀이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아바타’를 통해 또 다른 삶을 즐기면서 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온라인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은 출퇴근 시간을 줄여줄 뿐만 아니라 더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온라인 회의를 하면서 기존의 사진이나 화상 이미지가 아니라 아바타로 회의를 진행하는 것이다. 깜찍하고 기발한 아바타들의 회의가 사무실에서의 회의보다 더 재미있지 않겠는가?”

( 정리=崔聖煥 전문기자 sungchoi@chosun.com )

◆마이클 하임 교수는… 가상현실 속의 분신 ‘아바타’연구 디지털 문화 철학의 개척자 명성 - 가상공간(cyberspace)의 철학자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는 마이클 하임(Michael Heim). 하임 교수는 물질적 욕구 충족을 통해 행복을 추구해 온 인류가 더 이상 물질로는 욕구충족이 될 수 없음을 절감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경우 인류는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통한 욕구충족의 방식을 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 가상현실을 단순한 컴퓨터 기술의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현실이자 하나의 문화로 파악하고 있다.

하임 교수는 1987년 ‘전자언어(Electric Language)’라는 책에서 워드프로세서가 글을 쓰는 것은 물론 생각하는 방식까지 바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93년에 쓴 ‘가상현실의 철학적 의미’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에서 번역돼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현재 캘리포니아에 있는 디자인예술대학(Art Center College of Design)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2002. 4. 2 '2002 미래로 가자'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