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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조정'이 실종된 사회
2003-05-15
[자료집]4차산업화시대플랫폼사업자.pdf
'이익조정'이 실종된 사회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자기집단의 이익을 외쳐대는 '이익표출'의 목소리만 크게 들리고 있다. 이에 비해 여러 다른 목소리들 사이에서 조화로운 톤을 찾아내는 '이익조정'은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이래서는 어떤 체제도 원활하게 움직여나갈 수 없다. 작금의 상황을 보더라도 노사갈등으로 심각한 파업사태가 줄을 잇지만 원만한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생존권이라는 애매하고 자의적인 개념으로 포장하면 어떠한 비상식적이고 탈법적 이익표출도 용인되고, 정부의 이익조정 권위는 있으나마나 비웃음만 산다. 교육계가 양분되며 극한대결로 치달리지만 조정의 기미가 안 보인다. 환경단체와 개발론자의 대립, 유해시설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 대미-대북 관계에 대한 이념집단들의 충돌 등 수많은 사회갈등이 이익표출 과다와 이익조정 실종으로 인해 심각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사회영역이야 그렇다 치자. 이익조정을 선도해야 할 정치권과 정부 내에서도 상황은 더욱 심하다. 북핵, 주한미군, 언론개혁, 정계개편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서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고위 공직자까지 여러 정책결정자가 각양각색의 이익표출에 열심이다. 하지만 이익조정엔 영 서툴다. 이익조정 실패로 인한 여야간 교착은 통상적인 당연지사가 되었다. 각당 내부에서도 이익표출과 이익조정 사이의 불균형이 당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와 행정부 내 이익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국정의 방향감각을 상실시킨다는 데서 심각성이 크다. 민주화될수록 이익표출이 커진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화의 한 지표로 이익표출 정도를 들 수 있다. 그러나 이익표출은 이익조정을 전제로 한다. 각종 요구만 난무하고 상충되는 요구들간에 조화를 찾지 못한다면 체제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사회갈등의 지나친 증폭을 통제할 수 없어진다. '투입'이 '산출'을 초과할 때 우리의 정치체제는 동맥경화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익조정은 이익표출만큼이나 민주적 체제운영의 핵심요소로 중시해야 한다. 물론 이익조정의 중요성을 주장하면서 한편으로 공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사실, 실현방법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실마리를 찾아보자면, 역시 균형이라는 덕목을 주목하게 된다. 이익조정을 위해 우리는 '이익집성'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제는 '이익통합'도 강조하며 양자간 균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이익집성이란 각자의 이익이 고정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다양한 이익들 사이의 가장 중간이 되는 입장을 절충점으로 찾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이익통합이란 각자의 이익관이 변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충실한 설득-대화 과정을 거쳐 공동선을 모색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후기산업화, 세계화, 탈냉전화 등 시대상황을 볼 때, 이익집성은 매우 요원해 보인다. 사회이익의 분화가 너무 복잡해진 탓에 중간적 절충점의 파악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어떤 결정도 광범한 대중의 지지나 공감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이익집성에만 매달릴 때 이익조정이 잘 안되는 시대다. 이익통합이라고 쉬울 리 없고 나름대로 한계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시대적 특성을 감안한다면 특정결과로 대중을 만족시키기보다는 과정상 충실함으로써 일반적 신뢰감을 형성하는 것이 더 용이하고 효과가 있을 것 같다. 현실적 효과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오랫동안 간과된 이익통합이 좀더 강조되어 이익집성과 균형을 이룬다면 이익조정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이제 이익통합에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林成浩 (경희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5. 15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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