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경제와 舊경제, 그리고 시장실패

정보가 시장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신화의 허울을 벗겨야 한다.  

세계화는 新경제new economy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동의어로 생각되고 있다. 신경제는 다시 新자유주의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어 무엇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인상이다. 이런 와중에 정체가 불명한 적과의 전쟁이 양상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자연히 세계화에 역행하느냐는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100여 년 전 유럽은 하나였다. 여권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고 원하는 국가에서 직업도 가질 수 있었다.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기차역, 시청, 오페라극장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은 이 모든 것에 찬물을 끼얹었다. 당시 사람들 역시 새로운 양상의 전쟁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더욱이 1차 대전의 와중에서 탄생한 공산주의는 지식인들까지 혼동에 빠뜨렸다. 1차 대전의 결과는 보호무역이었다. 세계화의 역행이었다. 그러나 이 보호무역이 2차 대전을 불러왔다. 2차 대전을 치르고 깨달은 것이 자유주의였다.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이 자유무역이었고 그 규모는 점점 커져갔다.

테러집단이 십분 활용하고 있었던 수단이 세계화의 첨병인 인터넷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러니다. 이 같은 간단한 관찰로도 테러로 세계화가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경제가 위축되기는커녕 더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에는 신경제의 핵심에 대한 이해가 깔려 있다.

신경제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생산양식에 변화를 뜻한다. 전에는 자본과 노동이 생산의 수단이었다. 각국이 자본을 축적하느라고 여념이 없었고 가장 본능적인 수단이 제국주의였다. 심지어 마르크스조차도 "축적하라, 축적하라, 그것이 모세이며 율법이니라"라고 갈파했을 정도였다.

이 같은 생산 방법이 20세기까지 계속되었다. 자본의 축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척도가 되었다. 하나의 경제를 관찰할 때 노동자가 무슨 수단으로 생산하느냐를 관찰하면 그 경제가 어떠한 경제인지 알 수 있다. 원시적인 도구를 사용하느냐 자동화된 기계 앞에 서서 기계를 감독하고 있느냐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최근에 新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러다이트 운동은 수공업에서 공장제 공업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자 실업의 위기에 몰린 사람들이 기계를 때려부수는 운동을 말한다. 지금 신러다이트 운동은 글로벌화로 실업에 위기에 몰린 사람들의 글로벌화 반대운동을 가리킨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은 실패하였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여 사람이 직장을 잃으면 전에 없던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새로운 공장에서 직장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뵘바베르크가 발견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원하는 물건을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고전적인 예를 들어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손으로 잡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그물로 잡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러다이트 운동은 그물 때문에 손으로 잡는 사람이 직업을 잃게 되므로 그물을 없애라는 주장과 같다. 그물을 만들려면 실을 만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바늘을 만드는 철공소가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바늘은 물고기 잡는 행위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목구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물고기 잡는 방법으로 통일이 이루어지는 곳이 시장이고 물고기 잡는 과정이 복잡해지고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산은 커지는 것이다.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직장은 많이 창출되고 시간이 길어질수록 보수는 많아지는 것이다. 이 같은 구조를 통칭하여 舊경제old economy라고 부르자.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오면서 20세기에 뿌린 씨앗이 발아를 시작하였으니 그것이 곧 인적자본으로 변신한 노동이요, 정보로 탈바꿈한 물적자본이다. 물적자본의 역할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인적자본과 정보의 역할이 물적자본과 노동의 역할보다 커지고 있다. 이것이 신경제의 요체이다.

구경제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단일 종목을 고르라고 하면 철도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철도가 발명된 이래 자본주의가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장을 확대하였기 때문이다. 대량의 물자를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먼 지역까지 공급해 주는 철도망은 곧 인체의 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전에는 지역을 벗어나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이 멀리 여행도 가능해졌다. 전쟁의 양상도 달라졌다.

하나의 전투에 천하를 걸었던 시절의 문제는 보급이었다. 이런 점에서 미국의 남북전쟁은 戰爭史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적을 죽이고 물자를 약탈하면 끝나던 전투가 어디에선지 알 수 없는 곳에서 기차가 끊임없이 조달하는 물자와 병사들 때문이다. 나폴레옹 시절만 해도 전투를 찾아다니며 구경을 즐기는 귀족들이 많았다. 전투는 군인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절도 끝났다.

철도가 혈관이라면 인터넷은 神經網이다. 물자는 철도에 의존하지만 정보는 신경망에 의존한다. 식민지 시절 미국의 수도 윌리암스버그에서 간행하던 신문을 본 적이 있는데, 파리 발 최근 뉴스라는 것이 3개월 전의 소식이었다. 금융황제 로스차일드Rothchild가 증권시장에서 큰돈을 벌었던 기회가 워털루 전투였다. 그는 밀사를 현장에 보내 전승소식을 비둘기를 이용하여 남보다 며칠 앞서 통보 받을 수 있었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큰돈을 벌었다. 유명한 소설의 주인공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원수를 멸망시키는 데 이용한 방법이 당시 등장한 전신을 이용한 것이었다. 정보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신경망을 타고 흐르는 세상에서 여기에 편승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정보는 흔히 시장실패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여 신경제의 앞날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 회의에는 정보가 시장실패의 세 가지 특성이 있다는 주장에 근거한다. 이 생각은 정보에 의존하는 신경제의 앞날에 비관적인 영상을 투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는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니다.

첫째, 정보가 공공재화public good의 특성을 가졌다는 주장이다. 아무리 독특한 생산 방법이라 할지라도 비밀이 없다. 이미 알려진 것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공공재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공짜로 사용하는 특성이 사실이라면 정보의 생산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하여 적어야 한다. 아무도 자신의 새로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공짜로 나누어주려고 생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정보는 그 양이 적어서가 문제가 아니라 많아서 문제라면 문제이다. 그렇다면 정보 생산자는 무슨 안전 장치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정보를 생산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여기에 등장한 방법이 공공재화와 사적재화를 함께 묶는 것이다. 예를 들면, 웹사이트의 정보는 공짜이지만 여기에 기업광고를 함께 끼워 파는 방법이 그것이다. 웹사이트에 정보를 제공하는 생산자는 정보를 많이 제공할 동기가 부여된다.

사적재화와 끼워 파는 방법 이외에 서로 다른 정보를 끼워 파는 것이 등장하였다.

두 명의 소비자(A와 B)와 두 가지 정보 상품(W와 S)을 생각해 보자. A는 W를 3달러에 살 용의가 있고 S는 2달러에 살 용의가 있다. 반대로 B는 W를 2달러에 살 용의가 있고 S는 3달러에 살 용의가 있다. 만일 두 정보 상품을 따로 따로 판다면 각 상품의 가격은 모두 2달러에 결정되어 수입은 8달러가 된다. 그러나 S와 W를 함께 묶어 팔면 5달러에 팔 수 있으므로 수입은 10달러가 된다.

만일 생산비가 9.5달러라면 따로따로 파는 경우에 그 생산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지만 묶어서 팔면 계속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묶어 파는 것은 사실 가격차별에 해당한다. 정보 생산에 있어서 가격차별 방법을 택하지 않으면 생산되지 않는 정보가 많을 것을 생각할 때 묶어 파는 방법이 가격차별이라 하지만 효율성을 높여 주는 것은 틀림없다.

가격차별의 또다른 방법은 같은 정보를 품질을 달리하여 서로 다른 고객에게 파는 것이다. 예를 들면 PC를 위한 윈도우NT와 서버를 위한 윈도우NT이다. 두 정보 상품은 동일하지만 가격차별로 정보의 특성을 극복한 예이다. 또다른 예는 넷스케이프의 인터넷 버전은 공짜이지만 CD에 저장된 버전은 공짜가 아니다. 요약하면 공공재화의 특성을 가격차별로 회피하는 것이다.

둘째, 시장실패 주장의 또 하나 이유는 정보가 네트워크 재화network good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 기인한다. 전화의 예를 들어보자. 전화는 혼자만 사용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나 이외에 누군가가 전화를 소유할 때에만 이용 가치가 있다. 가입자가 적던 시절 전화사용비용은 매우 비쌌다. 가입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추가 가입자는 부담하는 사용비용은 싸지게 마련이다. 따라서 누가 처음에 가입하려는가의 문제가 대두되고 그만큼 사회적으로 최적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네트워크 재화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타자기를 예로 들어보자. 타자기의 영문 글자판은 QWERTY 배열을 따르고 있다. 초기 발명자의 골칫거리는 기계보다 손의 움직임이 빨랐다는 점이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손가락을 느리게 움직이도록 글자를 배열한 것이다. 세상은 바뀌어서 기계의 움직임이 손가락 움직임보다 비교가 되지 않게 빨라졌지만 글자판의 배열은 그대로이다.

이것을 바꾸어 보려고 새로운 글자판이 나왔지만 여전히 구식 글자판이 대종이다. 이러한 현상을 네트워크 재화의 자물쇠 효과라고 부른다. 또 하나의 예는 비디오의 VHS 기종과 베타 기종이다. 기계적으로는 베타가 우수하지만 이미 시장이 VHS 기종으로 자물쇠 채워졌다. DOS/Window와 매킨토시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정보 상품의 이러한 특성을 들어 정보 시장은 최적이 못 되고 정보상품에서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주장한다. 옛날의 철도 발명과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타자기의 글자판을 비교 연구한 리보위츠Liebowitz와 마골리스Margolis는 기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글자판의 개량으로 의미 있는 차이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보고하고 있다. 윈도우와 매킨토시의 예도 마찬가지이다. 구경제에서 생산자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무임승차 고객을 배제하려는 전략을 썼다. 매킨토시가 바로 구경제의 이 방법을 따랐다.

매킨토시는 복사를 불법이라고 규정했지만 막는 데는 실패하였다. 사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윈도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무임승차 고객free rider을 환영하였다. 무임승차자가 바로 윈도우의 사용을 촉진시켜 윈도우의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다. 그 결과 윈도우의 시장가치는 오르는 반면 매킨토시는 시장에서 사라졌다. 윈도우는 신경제의 특성을 정확히 이해한 것이다.

셋째, 정보가 경험재화experience good의 특성을 갖는다는 주장이다. 경험재화와 검사재화inspection good를 구분한 것은 넬슨Nelson이다. 경험재화는 소비자가 그 재화를 구입하기 전에는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용해 봐야만 알기 때문이다. 정보의 특성이 이러하다. 구입하지 않고 알 수 있는 재화가 검사재화이다. 구입하기 전에 눈으로 검사해 볼 수 있는 재화이다.

경험재화의 특징은 시장실패이다. 이 특징 때문에 소위 정보의 역설이 성립한다. 정보의 수요에 있어서 그 정보를 구입하기 전에는 그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정보는 공짜로 구입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구경제의 사고방식을 빌리면 소비자가 그 재화의 가치를 모르면 흥정이 되지 않고 따라서 시장은 실패한다.

그러나 정보의 역설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소위 수직결합의 방법vertical integration이다. 기업들은 연구개발은 외부에 수주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있다. 연구개발은 정보생산의 대명사인데 결과물을 팔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보아도 80년대와 90년대에 연구개발의 협력은 대체로 실패로 끝났다.

또 하나의 방법은 신뢰의 구축이다. 독자들은 신문을 구독할 때 오늘은 이 신문 내일은 저 신문을 사 보지 않는다. 믿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의 제품이 좋다고 경험적으로 알게 되면 그 회사의 다른 제품을 신뢰하고 구입한다. 정보의 역설을 뛰어 넘을 수 있는 방법이 신뢰이다. 신경제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핵심 요인은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정보 상품은 시장실패를 야기하지 않는다. 얼마든지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방법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여기에 구경제 사고방식으로 대처하면 실패하고 적극적으로 신경제 사고방식으로 대처하면 시장은 실패를 모르고 번성할 가능성이 있다. 신경망으로 미국 국토를 덮은 특수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의 신경망도 이렇지는 못할 것이다.

혈관에 해당하는 운송산업과 신경망에 해당하는 정보망의 완성도에 따라 국가의 경제적 지위가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테러는 바로 이 신경망을 이용하면서 신경망을 마비 시키려는 글로벌화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정보 상품의 시장 실패를 들어 그 가능성을 과소 평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김학은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중앙일보 에머지 2001.12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