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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토론 각색 이미지 벗겨라
2002-12-06
TV토론 각색 이미지 벗겨라 5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후보였을 때, 자신은 요즘 TV만 생각하고 다닌다고 말할 정도로 TV 선거운동을 중시했다.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사상적으로 과격하다는 이미지를 뒤집어 쓴 김대중 후보로서는 TV야말로 일시에 전 국민을 상대로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라고 믿었을 것이다. 실제로 김대중 후보는 TV 선거운동을 통해 부정적 이미지를 완화시키는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이번에도 모든 후보가 다른 일정을 취소하고 전적으로 이에 대비할 만큼 TV 토론은 후보자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행사다. 또한 유권자들에게도 TV 선거운동은 편리한 방식이다. 과연 몇 명의 국민들이 유세장에서 후보들의 연설을 듣거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았을까. 그러나 TV 선거운동은 유권자들이 별다른 수고를 하지 않고도 후보들의 면면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사흘 전 실시된 이번 대통령 선거의 첫번째 TV 토론은, 5년 전보다 시청률은 다소 떨어졌다고 하지만, 길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적지 않은 수의 유권자들이 큰 관심을 갖고 시청한 것이 사실이다. TV 토론의 평가에 대해서는 각 당이 제각각이지만 대북정책 등 일부 분야에서는 후보간 차별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TV 토론에서 드러난 문제점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미지 선거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TV 토론이 유권자들에게 중요한 까닭은, 이 방식이 단지 선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민주 사회에서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인 국민에 대한 설득력을 살펴볼 수 있게 해 주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TV 토론은 상호 논박의 과정을 통해, 각 후보가 자신의 정책 대안이 보다 타당하고, 바람직하고, 실현가능하다고 TV 앞에 모인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기회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TV 토론은 그다지 만족스럽다고 보기 어렵다. 짧은 시간 내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 답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을 취한 탓에 심도 있는 논의와 상호논박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고, 실질적인 정책 내용보다 오히려 '부패원조당, 부패신장개업당'과 같은 재치문답식 표현이 더욱 주의를 끌었다. 일부에서 이번 TV 토론이 비방, 설전 중심이었다고 평가 절하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TV 토론의 내용 선정도 지나치게 형식적 평등만을 강조한 듯하다. 각 정당은 선거를 앞두고 주요 이슈를 선정해 선거운동을 이끌게 마련이다. 그것은 과거 정부에 대한 비판이 될 수도 있고 집권 이후의 청사진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후보별로 무게를 두는 정책 이슈가 각자 다르게 마련이지만 이번 TV 토론에서는 모든 사안에 대해 각 후보가 일률적으로 입장을 밝히도록 요구받았다. 그 결과 많은 분야에서 후보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지 않게 되었고, 후보간 TV 토론이 마치 '장학퀴즈'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까지 갖게 했다. 각 후보가 TV 토론장에 자료를 들고 갈 수 없게 한 것도 문제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후보간 토론이 각 정당이 마련한 체계적인 정책안에 근거하기보다는 후보자의 기억력과 순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뜻밖의 실수로 예상치 않은 즉흥적인 방안이 제시될 수도 있다. 1980년대 뉴질랜드에서는 총리가 TV 토론 중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즉흥적으로 대답한 것이 이후 실제로 선거제도를 개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각 후보는 과감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려고 하기보다 실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토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TV 토론이 없는 선거를 이제는 생각하기 어렵게 됐다. 그리고 TV 선거운동이 존재하는 한 좋은 이미지를 연출해 내려는 후보들의 노력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TV 토론이 얼마나 이와 같이 각색된 이미지를 벗겨내고 후보들의 실체를 생생하게 유권자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좀더 효과적인 TV 토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康元澤 (숭실대 정치학 교수) 출처 - 중앙일보 2002. 12. 6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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