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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족수 미달입법의 추태
2002-11-12
정족수 미달입법의 추태 지난 8일 국회에서 벌어진 일들은 국민을 다시 한번 허탈하게 하였다. 국회 불신, 정치 불신의 현장이었다. 그 첫째는 정족수가 미달인 채 40여 개의 법안이 통과되는 일이 일어난 것이고, 둘째는 새해 예산안의 통과 과정에 있어서는 안 될 편법적 증액과 끼워넣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첫번째 문제다. 정족수는 토론의 활성화와 신중한 판단을 위한 법률 통과의 법적 요건이다. 입법을 하는 국회가 법률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의무를 원천적으로 게을리한 경우로, 명백한 위법이다. 물론 상임위원회 중심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국회에서 본회의는 본질적인 심의에 부적절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법적인 요건을 결핍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번째 문제는 오랫동안 제기되어 온 것으로, 갖가지 방법을 통하여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위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상임위와 예결위의 심의 과정이나 국무위원의 현장에서의 형식적 동의 등은 앞으로 크게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다. 국회의원을 선량이라고 한다. 필자가 이른바 선진국의 선량들을 만나서 왜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대부분 애국심과 공익을 대표하는 자긍심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대표성을 기반으로 하는 그들의 활동에 절대적인 의미를 두는 것이다. 한국의 국회의원들도 개인적으로 보면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포부도 높고, 활동력도 대단하며, 머리도 비상하고, 건강도 보통 이상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활동은 보면, 애국심과 공익과는 거리가 먼, 재선을 위한 정쟁이 주관심이고, 지역구 사업이 두번째 관심사다. 그러니 본회의 참석에는 관심이 없고 지역구 사업이라면 국민의 세금쓰기를 남의 돈쓰기로 고집한다. 특히 대통령 선거가 가까이 다가오는 시점에서는 대선 후보의 눈도장이 중요하고, 지역구의 사업이 대선 표몰이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대통령 선거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그것은 역시 3단계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국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애국심을 가지고 지역구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자세를 가지길 바랄 뿐이다. 개인들의 작심만으로 불충분하면 한층 심금을 울리는 윤리강령이라도 만들어서 국회 구석구석에 매달 수밖에 없다. 두번째는 국회의 내부 제도화를 서두르고 리더십을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안건의 심의 과정을 좀더 개선하여 국회의원들이 본회의에 앉아 있는 것이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아울러 의원이 정당의 파견자로서 정당의 수뇌부에 잘보여야 하는 ‘헌법기관’이 아니고, 국회의 리더십을 수용하는 ‘국회의원’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 국회의 리더십을 다욱 강화해야 한다. 국회 의장단은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위원회의 위원장직도 권위 있는 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사법부나 행정부의 수장에 비하면 국회 수장의 권위가 가장 취약한 점은 앞으로 크게 개선되어야 한다. 마지막 장치는 외부 통제다. 국회의원의 출결을 바로 알 수 있는 전자 장치를 도입하고 출결 상황을 항상 공개하여야 한다. 세금을 들이더라도 시민단체들이 항상 감시할 수 있고, 그 결과가 다음 선거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미 통과되었다고 언급한 40여개의 ‘법률’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나 사법부의 개입이 있기 이전에 국회 스스로 재의결 등의 교정 조치를 발동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본다. 이 문제와 관련, 차제에 국민에 대한 정중한 사과도 필요하다. 그리고 끼워넣기로 편성된 예산 중에서 사회간접자본과 관련된 예산은 내년 이후에도 추가적인 투자가 필수적인 사항이 적지 않으므로 이러한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 장치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장기 투자의 소요가 제기되는 경우 이것이 재정에 미치는 장단기적 영향을 평가하여 심의시에 고려하는 장치는 시급한 상황이다. 이달곤 (서울대 정책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2. 11. 11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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