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내몰리고 있는 지역신문


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 이후 지금까지 지방신문들이 심각한 경영상의 여러움을 겪고 있다. 살림살이가 옹색해지면서 조직을 줄이고 보수를 깎는 것은 물론 멀쩡한 사람들을 내보내기도 했다.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다. 내가 살고 있는 대구 지역 신문들도 모두 정상이 아니다. 부도가 났거나 부도 상태에 있고 겉은 멀쩡한 것 같아도 속은 텅 비어있다.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되었나? 어떤 사람은 지역신문 자신의 경영상의 과오를 지적한다. 주제넘은 무리한 설비투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진단이다. 국제통화기금관리체제와 함께 금리는 높아지고 광고시장은 위축되어 지역신문들은 빚을 감당하기에 허겁지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리고 지역신문들이 자기혁신을 게을리 했던 것도 위기를 가중시킨 원인이라고 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모두 동의할 수 없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주장은 일종의 '희생자 비난론'(victims-blaming-theory)처럼 들린다. 나는 그런 주장이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지역신문의 지나친 설비 투자는 '중앙'에 있는 신문들의 '패권적 공세' 때문이었다는 사실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무차별적 시장 확장 전략에 따라 '중앙' 신문들이 지역신문들의 씨를 말릴 기세로 공격해 오는 상황에서 지역신문들은 힘에 버거운 설비투자를 하도록 '내몰렸다'. 그것이 근본적 원인이다. 오늘날 지역신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의 근원은 지역신문의 경영적 오류가 아니라 '중앙' 신문의 '패권적 공세'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중앙'의 신문들이 지역 시장을 초토화하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서울 중심의 일극적 집권구조는 지역언론의 위기를 초래한 더 근본적 원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쉽게 지방신문의 자기 혁신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한다. 이른바 지역신문의 '정체성 위기'를 지적한다. '지역신문은 읽을 거리가 없다' '시시하다'라고 비판한다. '지방자치가 실시되면 지역신문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지역신문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비판도 앞뒤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읽을 거리가 없다는 점은 지역 신문기자들이 게으르거나 안목이 없어서가 아니다. 지역에 무슨 자기결정권이 있어야 관심 있는 '새로운 그 무엇'이 나올 것이 아닌가? 다시 말하자면 '뉴스'가 나올 것이 아닌가? 모든 중요한 일은 서울에서 이루어지는, 무늬만 지방자치인 현실에서 새로운 그 무엇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지방신문은 매일 '시시한 기사'들로만 채워질 수 밖에 없고, 독자들은 그런 지방신문에 대해 심드렁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서울 중심의 일극적 집권구조를 깨지 않고는, 즉 지방이 자기결정권을 가지지 않고는 지역신문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중앙집권적 패권구조에서 지역경제가 온전하게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역신문을 지탱할 '광고시장'의 형성을 기대하겠는가?

지방경제가 다 죽고, 지방대학이 텅 비고 있고, 지역사회의 인심이 팍팍해지고 있는 이런 판국에, 이런 현실을 그대로 둔 채, 어떻게 지방신문이 제대로 서기를 기대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탈집중화, 지방분권이다.

지방신문 종사자들의 오류와 나태를 무조건 옹호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방신문의 경영위기, 정체성의 위기를 낳은 근본원인을 그냥 둔 채, 오히려 그 근본원인에 의해 희생된 자를 비난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몇 개의 중앙지들이 정부의 세무조사가 언론 탄압이라는 항변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그 중앙지의 무가지가 대량으로 뿌려지고, 이른 바 비싼 판촉 선물이 낮뜨겁게 뿌려지고 있었다. 중앙지들의 이런 위선과 불공정 경쟁 행위를 그냥 둔 채 지방신문의 자기 혁신 부족을 질타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연초에 한 중앙지는 지방이 다 죽어가고 있다는 시리즈를 내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 시리즈가 계속될수록 실망이 커졌다. 요컨대, 그 신문의 주장은 현재 지방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지방의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전제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을에 들어와 또 다른 한 중앙지는 "어느 어느 지방에는 추석이 없다"라는 충격적 제목으로 지방을 걱정하였는데, 그것도 내가 보기에는 지역주의에 기댄 판촉 전략에 다름이 아니었다.

지방신문의 위기 극복은 물론 지방신문의 자기혁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일극적 중앙집권체제의 타파라는 관점에서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지역사회가 힘을 합쳐서, 자기결정 능력의 확대를 통해서 문제해결의 단초를 찾아야 하리라고 본다. 대구지역 언론 매일신문의 서상호 주필은 <분권과 혁신>이라는 웹 메거진(http://webzine.tiss.re.kr)에서 '정보화 시대에 지방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란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새겨들을 말이다.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