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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개방과 대학 경쟁력
지식기반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은 막중하다. 대학은 창의적 연구를 통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고, 학생 교육을 통하여 유용한 지식을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우수한 인적 자원을 양성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이 같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매년 실시되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 (IMD)의 평가에서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은 항상 최하위에 머물고 있고, 최근에 세계 석학들로 구성된 서울대 '최고자문위원단' 에서는 한국의 간판대학인 서울대학교도 세계 일류 대학보다 10년 내지 20년 뒤진 수준이라고 혹평하였다. 또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대다수의 학부모와 기업인들은 대학이 사회에 필요한 창의력 있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이렇게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절대적 투자의 부족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낙후된 경쟁력의 가장 큰 요인은 대학 내와 대학간의 경쟁이 없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수들이 한번 전임교원으로 임용되면 대부분 정년이 보장되며, 월급도 연공서열로 결정된다. 학생들도 대학에 입학하기가 어렵지, 일단 들어가면 큰 문제가 없는 한 졸업한다.
또한 대학간의 서열이 고착화되어 있어, 소위 일류 대학 교수들은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한다. 그러기에 교수나 학생이나 한 번 진입 장벽을 넘고 나면 굳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현실은 승진과 정년 보장을 위해 교수들이 치열한 연구 실적 경쟁을 벌이고, 대학의 순위가 연구와 교육의 질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미국의 경우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학도 민간 기업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국내외 경쟁을 거치지 않는 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세계 수준의 대학들이 미국에 많이 몰려 있게 된 일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나라 대학의 질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대학 사회에 경쟁 풍토를 도입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 곧 다가올 국내 교육 시장의 개방을 하나의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선진 외국 대학이 국내에 분교를 설치하게 된다면, 우리나라 교육의 국제화에 크게 기여함은 물론 국내 대학들에 신선한 자극이 될 것이다. 한 예로 하버드 대학의 경영대학원 프로그램이 국내에 설치된다면, 과연 서울대나 연세대 경영대학이 변화하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또한 이러한 상호 경쟁 과정에서 국내 대학들은 선진화된 대학의 운영이나 의사결정 구조도 배울 수 있을 것이며, 교육부의 획일화된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교육 문제가 그러하듯 제도만 바꾼다고 이 같은 효과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선 단순히 외국 대학의 분교를 허용하는 수동적 자세를 벗어나, 싱가포르처럼 우수한 외국 대학의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한국 대학사회의 안일한 풍토를 바꾸려면 소위 국내 일류대학들의 독점적 지위를 위협할만한 해외 유명 대학이 들어오는 것이 필요한데,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인재들이 찾아오는 외국 일류 대학들은 굳이 한국에 분교나 프로그램을 설치할 동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또한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대학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는데 익숙해져 있는 관리들의 소극적 태도와 장벽도 뛰어넘어야 한다.
지난 해 말 교육인적자원부가 야심적으로 마련하여 대통령에게 보고한 "국가 인적자원개발 기본 계획"에도 "외국 대학의 적극 유치와 대학 교육의 국제화 추진"이라는 제목은 있지만, 구체적 실천 계획은 없고 원론적인 언급만 되어있는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명목상의 개방에 그칠 뿐 실질적인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여기에도 강력한 리더십과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보인다.
오세정(비전@한국 공동대표, 서울대 교수/물리학)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회원칼럼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