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과 지방의 갈등을 넘어 지방을 살리는 분권을 하자

  세계화와 지방화의 동시적 진행을 의미하는 20세기말의 "세방화" 현상이 21세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국가의 경쟁력이 지방정부의 경쟁력과 밀접하게 관련되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지방화가 전제되지 않고는 국가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앙집권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1990년대에 들어 영국과 일본 등 많은 국가가 지방정부의 경쟁력 제고를 위하여 지방분권을 추진하였다. 지방분권은 지방정부의 정책능력을 제고하고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제고하는데 필수적인 사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도 1991년 30여년 만에 지방자치를 부활하여 지방화시대를 대비하기 시작하였다. 지방의회가 출범한 4년 후인 1995년 단체장이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 지방화를 대비한 외형적 틀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1999년 1월에는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 촉진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지방분권을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지방정부의 정책과정에 지역주민의 의사가 존중되고 적지 않은 효과가 발생하였다.

  그럼에도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부족과 제도적 미비 때문에 효과적인 지방자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방정부의 정치적 행정적 권한이 제도적으로 극히 제한되어 지방정부가 지역사정에 부응하는 지방의 정치와 행정을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지방분권이 매우 중요한 행정개혁 사안으로 학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방분권에 관한 시민단체의 운동은 2000년 이후 본격화되었다. 2000년 9월의 "지방분권 운동본부" 결성, 2001년 2월의 지방자치헌장 제정 합의, 2001년 8월의 비수도권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지방포럼" 결성 등이 예이다.

  그러나 지방자치 및 지방분권에 대한 시민과 중앙정부 공무원의 의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시민단체의 지방분권을 위한 노력이 시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못 받고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의 부조리나 문제점이 발견될 때마다 중앙집권적 제도의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단체장의 임명제를 포함한 지방자치법 개정 논의가 그 예다. 이로 인해 지방과 중앙의 갈등이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 언론, 정치권, 시민단체가 서로 지방과 중앙으로 나뉘어 다툴 기미까지 보여 이에 대한 장기적 대책이 시급하다. 이에 우리 나라 지방분권의 특징 및 문제점을 분석하여 향후 과제를 제시하고자 한다.

 지방분권의 특징은 지방이양촉진법 제정 당시 논의되었던 지방분권의 접근방법에 관한 거시적 특징과 지방이양촉진법의 운영, 즉 지방이양추진위원회의 활동에 대한 미시적 특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거시적으로 볼 때 국가 통치구조의 근본적 개혁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할 이념설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 단순히 행정사무의 지방이양에 한정함으로써 형식적으로는 지방분권을 실시하는 형태를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컸다. 무엇보다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책무 등에 관한 근본이념이 법률의 형태로 표현되어야 한다.

 미시적으로 보면, 지방이양추진위원회의 운영과 관련하여 정치지도자의 낮은 관심, 지역주민의 무관심과 범국민적 추진체제 미흡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외에도 지방이양 대상사무들이 주로 지방정부가 요구하는 사업에 한정되고, 단위사무별로 심의 의결하는 방식을 채택하며, 지방정부의 지방분권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은 점이 문제들이다. 특히 단위사업별 접근방식은 고도의 행정적 정치적 성격을 띠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분야, 예를 들면 교육 및 경찰 등 이슈의 논의자체를 어렵게 한다. 현재까지의 논의결과를 보면 지방이양추진위원회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행정사무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지 못하였다. 지방분권은 행정사무 외에도 지방정부의 정치적 권한, 지방정부의 행정체제, 지방정부의 재원, 지방정부의 계층제 등과 함께 종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지방분권 논의를 행정사무에 한정함으로써 지방분권의 근본적 과제를 도외시했던 만큼 기본 발상을 달리해야 한다.

 이제 효과적인 지방분권을 위해 첫째, 중 단기적으로 지방분권에 관한 기본 틀을 새로이 마련하는 것이다. 새로운 틀 속에는 무엇보다도 지방분권의 기본이념을 명시하여야 할 것이다. 기본이념은 지방분권의 근본적인 방향을 결정하는 것으로서 정권이나 관련부처 장관의 교체에도 불구하고 변경되지 않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기본이념을 포함된 기본 틀은 자치헌장, 지방자치보호법(가칭) 등 법률의 형태로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본이념에 포함될 내용으로는 2001년 3월 선포되었던 지방자치헌장의 내용에서 보듯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명확한 역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와의 상호관계의 재정립, 중앙정부의 책무, 지방정부의 책무, 보완성의 원리, 지방정부의 행 재정체제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과 상호관계 등 기본이념의 차이에 따라 기능배분 및 지방분권의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방정부헌장과 일본의 지방분권추진법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사례와 같이 지방분권의 근본적 방향으로서 기관위임사무의 폐지 등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지역주민의 지방분권에 대한 이해와 관심도 성공적인 지방분권 개혁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영국과 일본의 지방분권 과정에서는 지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스코트랜드의 경우 스코트랜드 헌정회의가 작성한 지방분권 초안이 중앙정부가 제정한 법률의 중요한 골격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지방6단체가 지방분권추진법의 대안을 제시하여 지역의 의견을 반영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4단체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지방4단체는 지방분권 개혁을 요구하는 정치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지방분권의 내용, 즉 분권되어야 할 행정사무를 심층적으로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앞에서 논의하였듯이 지방이양 대상사무의 발굴작업이 커다란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 중앙정부에게 자발적인 행정사무의 지방이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등을 감안할 때 지방4단체야말로 지방분권의 대상을 연구 조사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지역주민의 지방분권에 대한 의식과 관심을 제고하고 성공적 지방분권 개혁을 위하여 매스컴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방분권 개혁 과정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로 지역주민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발할 수 있다. 중앙언론들의 최근 보도내용을 보면 지방분권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정부의 재정 파탄, 단체장의 부리 등에 대한 과대 보도는 그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넷째, 포괄적인 행정사무의 지방이양을 위하여 범부처 차원에서 지방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할 수 있는 새로운 추진체제의 구축도 고려할 만하다. 일본의 예와 같이 한시법의 제정을 통하여 포괄적인 지방분권을 추진한다면 업무지연의 위험성도 배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같이 개별적으로 구체적인 행정사무의 지방이양을 추진하는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행정사무의 개별적인 지방이양은 지역주민의 관심은 물론 매스컴의 관심도 끌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나 영국이 행했던 포괄적인 방식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향후 지방분권 논의는 보다 근본적으로 원칙적인 관점에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효과적인 지방분권의 모델로서는 일본의 행정적 분권보다는 영국의 정치적 분권 모형이 분권추진의 전략상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방분권의 반대그룹의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치 행정적 권한의 포괄적 이양과 지역의 시민단체 및 주민들이 참여하는 정치적 분권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행정사무별 이양보다는 포괄적 이양방식이 보다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포괄적 이양방식이 매스컴의 관심을 유도하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교육, 경찰 등의 기능을 포함하는 데에도 유리하다.

  지방분권의 추진과정에 지역주민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지역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방분권을 위한 정치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정치지도자의 리더십은 반대 그룹의 저항을 극복하고 지방분권의 올바른 방향설정을 위하여 필요불가결하다. 지금이야말로 수사적인 지방분권이 아니라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역의 복지증진을 위한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추진하여야 할 시점에 있다. 어떠한 명분으로도 지방분권의 흐름을 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대표집필: 김순은, 동의대학교 교수/사회과학부)

출처 - 비전@한국홈페이지 정책대안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