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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더지' 잡는 '소방서'
2005-02-23
'두더지' 잡는 '소방서' 최근 정부의 ‘수도권 주택시장 안정 대책’은 국지적 주택가격 불안 조짐에 대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보인다. 이 중 많은 관심의 대상인 판교대책은 두 가지 점에서 역설적이다. 첫째, 정부는 2003년 강남 아파트 가격 급등을 진정시키기 위해 판교신도시를 강남에 버금가는 주거단지로 개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제 판교 분양가가 분당과 강남 기존 아파트 가격을 자극하기 때문에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다. 둘째, 언론이 ‘판교 로또’를 겨냥한 분양경쟁 과열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분양가를 낮추기로 결정했다. 이는 당첨자들에게 더 큰 프리미엄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판교 대책으로 주택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이다. 우선, 아직은 내용도 알 수 없는 채권 병행 입찰제가 도입돼도 이미 계획된 중대형 아파트 공급물량이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판교 아파트 분양가격에 대한 기대로 주변 주택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 판교 분양가가 분당이나 강남 아파트 가격을 자극하는 게 아니라 공급업체들이 주변 아파트 가격을 감안해서 분양가를 책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에 분양되든 일단 분양된 아파트의 시장 가격은 입주가 완료되는 시점의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근본적으로 신규 아파트 가격이 단기적으로 전체 주택가격에 별 영향을 못 미치는 것은 매년 새로 공급되는 아파트의 수가 기존 주택에 비해 매우 적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판교 중대형 분양가 규제의 수혜자는 일반 서민이 아니라 더 큰 이득을 볼 7450명의 운 좋은 당첨자들이다. 그리고 작년 내내 진행된 아파트 원가 공개와 분양가격 결정에 대한 논쟁 끝에 마련한 대안을 시행하기도 전에 바꾼 정부는, 정책 일관성을 훼손하고 주택사업의 불확실성을 초래하였다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재건축 억제정책은 보다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다. 지난 3~4년 동안 서울 전체 아파트 공급의 절반 이상, 강남 지역의 80%를 차지한 재건축 사업이 전반적으로 지연되고 실질적인 공급물량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규 택지 개발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울, 특히 강남 지역의 아파트를 공급하는 유일한 길은 고층 재건축이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주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한 우리만의 독창적인 종합부동산세제나 투기억제책도 장기적으로 가격 안정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사회의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 주거수준 향상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나머지 부문에 대한 개입은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데 필요한 적절한 택지공급, 정상적인 규제와 세제, 장기 주택금융의 구축 등에 그쳐야 한다. 국지적·일시적 가격변동에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최근 우리나라 주택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난히 많이 올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정작 유난한 것은 가격이 오르든 내리든 정부의 개입을 요구하는 여론의 압력과 확실한 수단이 없는 줄 알면서도 그 압력을 이기지 못하는 정부의 임기응변적 시장 개입이다. 15년 전쯤에 한 주택정책 담당자가 주택정책 부서를 ‘소방서’에, 그 업무를 ‘두더지잡기’ 게임에 비유한 것을 기억한다. 국민소득이 두 배로 높아졌고 주택의 절대적 부족문제가 거의 해소된 지금에도 주택정책의 중심을 견지하지 못하고 임기응변식 대책에 매달려야 하는 정부가 안타깝다. 김경환 (서강대 교수) 출처 - 조선일보 2005. 2. 23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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