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자] 디지털 실크로드를 만들자

미래 한국 생명줄…프리네트-사이트 구축,문화생산-소비-유통

실크로드(silkroad)는 과거 서양문물이 흘러들어오던 유일한 젖줄이었다. 쌍방향 다자(多者)교역의 시대인 오늘날 그것은 우리의 생활영역에서 사라진 듯 보인다. 그러나 실크로드의 본질과 의미는 절대 사라진 게 아니다. 우리 마음속 깊이 살아 숨쉬고 있다.

실크로드의 복원이야말로 한국의 미래에 활력을 불어넣는 원천이다. 2020 기획팀은 이런 맥락에서 관념 속에 존재하는 실크로드를 디지털 시대의 정보고속도로와 접목시켜 ‘문화정보 실크로드(Cultural Information Silkroad·CIS)’를 구축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미래관리, 미래운영을 위한 지혜와 에너지가 생산·유통·교환·소비되는 교차로이다. 2020년 한국의 CIS에는 유연·감각·형상·표현이 담긴 문화가 소통되고 향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네 가지 구체적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문화연방국가’의 구축이다. 연방국가가 중앙집중의 독점성에서 벗어나 지방분권을 지향하듯, 문화연방국가는 우수한 지방문화를 발전시키는 거점지역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지방문화 거점지역을 대·중·소 단위로 100개씩 모두 300개를 만들자. 둘째, 각 지방에서 활동하는 문화패, 문화동아리, 공연단, 예술가를 포괄하는 영역별 문화소집단을 인구 1000명당 2개, 전국적으로 1만개를 만들자. 이들을 ‘문화커뮤니티’로 명명하고 국비로 지원하자.

셋째, 지방문화 거점지역과 문화커뮤니티를 함께 연결하는 문화정보실크로드를 만들자. 여기에 지역별 문화지도, 공연회·전람회·음악회의 일정과 내용, 문화예술인의 활동 상황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담고, 문화소비 장터와 문화인·문화커뮤니티 웹사이트를 만들어 일반인과의 항시적 만남이 이루어지게 하자. 이를 위해 국가가 운영비를 전담하는 프리네트(Freenet) 구축은 CIS의 필수적 조건이다.

넷째, CIS 구축은 미래 개척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라는 인식에서 이를 지원할 문화촉진기금을 신설하자. 특별목적세의 신설도 방법이다. 문화경쟁력이 미래를 여는 열쇠라면 국민 모두의 비용 분담이 요구된다.

( 송호근 서울대 교수·2020 기획위원 )

[미래로 가자] 2020년 한국-한국인…386세대의 전망

연령-세대간 구분 없어지고 ‘직업＋취미’의 1人다역시대

2002년 35세면 2020년엔 53세. 18년 후 우리 사회의 주역이 될 30대 6명이 서울의 중심 광화문 네거리에 모였다. 이들은 조선일보의 ‘2020 미래로 가자’ 기획을 화제로 자신들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오석태 =2020년을 목표로 내가 소속한 분야가 어디쯤 위치해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금융쪽은 IMF 외환위기 이후 변화가 많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2002년을 평균발전 수준이라 볼 때 금융은 1998년쯤에 머물고 있다.
▲윤요섭=치열한 국제경쟁에서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하는 제조업 분야는 평균 수준보다 2~3년쯤 앞서가는 것 같다.
▲용호성=공직사회는 평균(2002년)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앞선 것도 뒤진 것도 아니다. 이진희 =교육은 하드웨어 면에서 가장 낙후돼 있다. 80년대 수준이랄까? 그러나 교육 소프트웨어가 뒤떨어졌다고 보지 않는다. 교육은 너무 생산성만 강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윤=애니메이션 분야는 분위기는 2005년인데 인력 수준은 90년대 후반쯤이다. 사람은 많은데 쓸 만한 인재가 많지 않다.

◆미래 도약에의 걸림돌
▲용=정치분야를 꼽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생각이 다르다. 어느 분야이건 다 문제를 안고 있다. 남 탓하기 전에 자기 분야를 혁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한국 정치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미국식 예비선거를 본떴다지만 민주당의 국민 경선은 분명히 한단계 발전한 것이다. 좋다고 판단되면 주저 없이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진희 =갈팡질팡하는 교육제도가 문제다. 우리 교육을 생각하면 비관적인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할지 모를 때가 많다.
▲윤주=애니매이션 분야에는 별로 없지만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남성우월과 학벌·혈연·지연 등의 유교적 연고주의를 먼저 버려야 한다.
▲이수현=자기 삶의 방식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이 문제다. 사회를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도그마가 큰 문제다.

◆2020년, 무엇이 되어 만날까
▲용=나는 공무원하면서 아마추어 연주자, 인터넷 방송, 저술가로 1인다역(多役)을 할 것이다. 또 일보다 놀이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가령 지금은 취미로 3개월에 한 번 정도 밴드공연을 하지만 2020년쯤이면 매주 할 수 있지 않을까.
▲오=미국 그린스펀처럼 70세가 넘어도 존경받는 금융 전문가로 남고 싶다. 한국·중국·일본 경제를 거시적으로 전망하면서 우리의 진로를 개척하는 식견을 가질 수 있었으면…. 윤요섭 =전문경영인이 돼있지 않을까. 하지만 개인적으론 가족과 함께 ‘더 많은 추억을 만드는’ 인생을 살고 싶다.
▲이수현 =숲을 보호하는 일을 할 것이다. 반(半) 공무원, 반(半) NGO 운동가로 말이다.
▲윤주=아마 여름에는 인라인스케이트, 겨울에는 스노보드 타면서 젊은 아이들과 즐겁게 놀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업 아이템 구상도 하면서….

◆‘386세대’의 정체성은 유지될까
▲용=‘386세대’는 당위와 현실이 괴리된 허위의식을 갖고 있다. 시대적 과제를 고민하면서도 행동은 이기적으로 한다든지, 통일 운운하다가도 금방 분단 현실에 안주한다든지 하는 게 그런 예다.
▲이진희=‘386세대’는 어정쩡하다. 지금 10~20대는 모든 게 분명하다. 그들의 행동을 처음엔 이해를 못했지만 요즘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한다.
▲윤주=우리가 어정쩡하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자격지심(自激之心) 아닐까. 사람을 세대로 구분하는 건 2020년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과 놀이의 조화
▲용 =어려서는 ‘놀지 말고 공부하라’고 교육받았고 지금은 ‘놀지 말고 일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2020년은 잘 노는 게 중요한 세상이 될 것이다.
▲윤요섭 =노는 것은 나쁘다는 고정관념을 빨리 깨야 한다. 유교의 잔재다.
▲윤주 =내가 하는 일은 사람들에게 ‘재미’를 파는 것이다. 재미를 팔되 재미있게 팔아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다.
▲이진희=공부(일)를 열심히 하면 ‘잘 놀 수 있는 지위와 프리미엄’을 얻게 되는 게 현실이다. 2020년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용=지위가 높다고 개인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우리 선대들은 높은 지위를 얻는 법만 강조했지, 행복해지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

◆통일은 해야 하나
▲윤요섭=2020년은 통일을 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난 개인적으로 통일을 반대한다. 지금처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통일되면 남도, 북도 망한다.
▲오=나도 북한이 망해 흡수 통일되는 상황은 반대다.
▲윤주·이진희=도의적 차원에서 통일을 반대할 수는 없다.
▲이수현 =글쎄.
▲용=다들 말로는 통일 통일 얘기하지만 그건 허위의식이다.

( 李翰雨기자 hwlee@chosun.com )

출처 - 조선일보 2002. 4.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