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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문제점
2004-12-01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문제점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현행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하고 계열 금융회사의 의결권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와 전경련·기업체들은 공정거래법 개정에 대해 상반되는 주장을 펴왔다. 먼저, 재계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킨다고 우려를 표명해 왔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출자와 투자는 다르며 출자 제한으로 투자가 위축되는 것은 아니다. 굳이 필요하면 한 회사 안에서 사업부의 형태로 운영하면 된다’는 논리를 펴왔다. 이렇게 상반된 견해에 대한 해결책은 최근 변화하고 있는 기업 투자 형태와 기업조직의 원리 고찰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과거 우리 경제에서는 중화학 공업이 산업의 주축이었고 공장과 기계에 대한 실물투자가 핵심이었다. 그러나 근년 들어 정보·통신산업, 바이오산업 등 기술 및 정보 위주의 산업구조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은 기술과 정보 네트워크의 확보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다. 즉, 기업들은 시장 곳곳에 산재해 있는 핵심기술을 보유한 다른 기업에 대한 공동출자를 통해 네트워크를 확보하여 경쟁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 여건 아래에서 출자는 투자의 선행지표가 되고 있다. 특히, 대마불사론이 깨지고 실패한 투자에 대한 그룹 차원이나 국가 차원에서의 보호망이 사라짐으로써 투자에 따르는 위험을 전적으로 해당 기업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최근의 기업 환경이다. 따라서 기업은 출자를 통해 먼저 자기자본을 충분히 확충할 수 없다면 선뜻 위험이 따르는 투자에 나서지 않게 된다. 굳이 출자를 통해 다른 회사를 설립할 것이 아니라 기존 회사 내에서 사업부서를 통해 투자를 하면 된다는 공정위의 주장도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의문이 간다. 서로 다른 생산문화가 필요하거나 임금 체계가 다른 사업을 같은 회사에서 운영하게 되면 많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관계회사나 자회사를 통해 이질적인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금융회사의 의결권 제한과 관련해서도 뚜렷한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는 금융회사가 계열사에 출자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일반 기업은 그 재원이 자기자금이든 차입금이든 계열사에 출자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도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일정한 제약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금융회사의 경우 시장원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경영하도록 하는 것이 국민경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회사가 부실화하면서 해당 고객에게 피해가 갈 뿐 아니라 시스템 리스크를 통해 국민경제적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스템 리스크의 가능성은 은행과 비은행 금융회사 간에 큰 차이가 있다. 지급 결제 기능을 수행하는 은행의 경우 그러한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보다 엄격한 규제가 가해진다. 금융과 산업간 분리에 엄격한 미국이나 일본은 은행이 5% 이상 특정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증권이나 보험회사와 같은 비은행 금융회사는 그러한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규제가 완화돼 있다. 일본에서는 보험회사가 특정 회사의 지분을 10% 이상 취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은행과 달리 완화된 규제를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아예 규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외환위기의 뼈아픈 경험으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서 개별 금융회사 단위가 다른 금융회사를 합병하여 지배할 목적으로 특정 회사의 주식을 5% 이상 취득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엄격한 규제이다. 나아가 공정거래법은 이미 이렇게 엄격한 규제 아래 취득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서 의결권까지 제한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이 자꾸 제기되는 것이다. 국내적 상황 논리에만 급급하여 기업 환경 변화에 관련된 전체적 흐름과 변화를 무시한다거나, 기업 경쟁이 아니라 형평성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국제 경쟁이 심해지고 경쟁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부가 기업의 환경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김명수 (가톨릭대 경제학 교수) 출처 - 문화일보 2004. 12. 1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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