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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 숨통 막을 법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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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0 |
| 언론자유 숨통 막을 법안 진보세력들이 언론자유를 갈망하여 싸워온 것을 인간의 지성발달사라고 볼 수 있는데, 소위 진보파라는 사람들이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법제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고 있으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언론관계법이든 언론윤리든 모든 언론 규범은 모름지기 언론자유와 개인의 인격권을 조화롭게 보장하는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언론기관에 비해 언론을 소유하지 못한 개인, 특히 범죄 피의자나 피해자 또는 자신의 삶이 공개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들이 언론의 조명을 받음으로써 입게 될 피해를 막거나 사후적으로라도 구제하는 것은 시민사회가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당이 내놓은 언론피해구제법안에는 언론의 자유를 지나치게 억압할 수 있는 장치가 너무 많다. 이 법안에 규정된 사자(死者)의 인격권에 관한 민사상 특례는 언론의 정당한 역사기록을 위축시킬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언론피해의 손해배상 중재를 언론중재위원회에 맡긴 점과, 징벌적 손해배상의 흔적이 남아 있는 점이다. 이 법안은 법관에 의한 재판보다 더욱 신속한 구제를 이유로 언론피해로 인한 손해배상에 대해 먼저 언론중재위원회가 중재권을 갖게 했고, 손해배상액 산정에서 법원이 ‘실제의 손해배상액’이 아니라 ‘상당한 손해배상액’을 인정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 큰 문제가 있다. 첫째, 법원은 당사자 쌍방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며 평등한 입장에서 공격이나 방어를 하게 해야 하는데, 판사가 ‘상당성’을 근거로 손해배상액을 인정하면 언론사나 언론사측을 대리한 변호사의 변론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높다. 변론권 제한은 대한변호사협회의 지적처럼 법이 아닌 ‘판사가 왕’이 되어, 이 역시 인권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 법은 분쟁 사실에 대한 당사자 간의 주장 차이 또는 불완전하거나 불명확한 증거에 대한 법원의 소송지휘권인 석명권(釋明權)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 이것은 사실상 손해액의 산정이 곤란할 때, 실제 계산이 불가능한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인정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법안에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이 조항이 결국 그 의도를 담은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스스로를 진보 진영에 속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언론피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주장하는 것은 무지인가 아니면 오만인가? 징벌적 손해배상은 말 그대로 응보와 형벌의 차원에서 피해자가 입은 손해를 금전으로 갚게 하는 것으로, 명예훼손에 대해 형사책임을 거의 묻지 않는 미국에서 흔한 제도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이 배상은 언론이 악의적으로 위법행위를 저질렀을 때 이를 처벌하면서 앞으로 다른 언론들이 동일한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징벌적 피해배상 제도는 벌금의 과다한 부과를 금지한 수정헌법 제8조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루이지애나·매사추세츠·오리건 등 6개 주에서는 전면 금지되어 있고, 플로리다 등 8개 주에서도 상당히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연방 차원은 물론이고 그 밖의 많은 주가 철폐를 검토하고 있다. 명예와 사생활을 금전으로 환산하는 것을 덕스러운 일로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윤리관습이나, 서구 여러 나라들의 법률 정서로 보아도 형사 처벌에 더해 징벌적인 성격의 금전 배상까지 하라는 것은 언론자유에 대한 과잉 통제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유일상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 출처 - 조선일보 2004. 11. 10 시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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